“산에 자전거 타러 가는 것은 좋은데, 매일 언덕을 오르고 다운힐해서 다시 집으로 오면 무슨 재미가 있냐?”
머리가 약간 벗겨지려 해서 파마를 한 선배의 말에 따라서 이번에는 야영하기로 했다. 몇 주 전 비암리를 다시 찾았을 때도 야영했으나 노고산 정상의 군부대가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유명산 자연휴양림으로 야영지로 정해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이번 라이딩을 유명산으로 정한 이유는 순전히 다운힐을 위해서였다. 해마다 5월 셋째 주에 열리는 무주 산악자전거대회를 대비한 훈련을 겸해 유명산을 찾았다. 유명산 하면 모든 라이더들이 업힐을 연상할 것이다. 어비계곡을 통해 유명산을 오르는 코스나 양평 옥천냉면집에서 설매재 휴양림을 넘어서 배너머고개로 향하는 엄청난 업힐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업힐을 해본 라이더들이라면 유명산의 다운힐 또한 환상적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배너머고개를 넘어본 분들이라면 고개 정상에서 좌측으로 난 조그만 산길을 보았을 것이다. 이 산길을 차로 오르면 유명산 정상 턱밑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 직하에 차를 세워두고 정상에 오르면 등산객들은 산악자전거로 이 높은 산을 오른 것처럼 생각한다. 어깨에 힘을 주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유명산의 높이는 862m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이름은 1973년 북한산장으로 유명한 엠포르산악회가 국토 자오선 종주를 하던 중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을 발견하고 산악회 대원 중 진유명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레이더 기지가 정상을 장식한 용문산(1,157m)과 이웃해 있고, 약 5km에 이르는 유명계곡과 어비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유명산을 휴양림쪽에서 올라와 유명계곡쪽으로 내려간 분들이라면 흡사 백두산을 연상시키는 그 광활함과 고비사막을 연상시키는 그 척박한 사막과 같은 평원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패러글라이딩 활강과 산악오토바이, 그리고 사륜구동형 차를 이용해 이곳을 올라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산이 얼마나 산악자전거에 좋은 장소인지 잘 알 것이다.
다운힐 훈련에도 좋은 대상
우리는 이번 라이딩을 다운힐에 초점을 맞췄다. 차 두 대를 가지고 가서 유명산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어비계곡의 도로를 이용해 계곡의 끄트머리인 갈현에 한 대를 주차시켰다. 나머지 차에 짐을 옮겨실은 후 유명산 정상에 올라 주차시켜 놓고 다운힐을 한 후, 어비계곡에 세워둔 차를 이용해 다시 한 대를 회수해오는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계곡물에 냉수마찰을 하니 정신이 맑아지며 오늘의 라이딩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해먹고 차를 몰아서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시켰다. 유명산 정상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니 때마침 올라온 등산객들이 놀란 눈치다. 정상을 내려와 안부의 평원에서 다운힐을 준비하며 주변 장관을 조망했다. 전면에 보이는 남한강과 왼쪽의 용문산, 오른쪽으로 중미산과 전에 라이딩했던 푯대봉도 보인다. 여기부터 유명산 계곡 입구까지 다운힐 길이만 14km다. 신나는 다운힐이다. 앞사람이 먼지를 일으키며 내빼도 그 먼지를 마시며 마냥 즐겁다. 이때 다운힐 중 주의할 점은 사륜구동 차량의 흔적이다. 노면이 질퍽한 날 차량이 지나간 길은 마른 날 움푹 패여 브레이크에 손이 가게 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코너에 길이 심하게 패여 다운힐 기술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코너에 들어서기 전 크로스오버 자세 잡기와 시선 처리가 우선이다. 그리고 뒷바퀴에 체중을 실어 회전하는 반대쪽 발에 체중을 싣는 것 등 이론상 숙지한 기술들을 잘 써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15분쯤 신나게 다운힐을 하니 배너머고개 정상이다. 설매재를 통해 올라온 차들이 갈현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도 그 차를 따라서 좌회전해 갈현쪽으로 계속된 다운힐을 즐긴다. 길의 여건에 맞춰 약간 튀어나온 점프대가 있으면 신나는 점프를 하며 내려간다.
이윽고 다운힐이 끝나고 10분 정도의 업힐이 나타난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군부대 표지판 좌측으로 고개 정상을 향해 오른다. 고갯마루에 오른 후 다시 갈현까지 신나는 다운힐이다. 올라오는 차를 만날까봐 겁이 난다. 코너에서 차를 만나면 속도를 줄이기 어렵게 때문이다.
어느새 갈현에 다다른다. 잠시 후 일행들을 다시 만나 주차한 차를 가져오려 하니 갈현에 세워둔 차의 주인이 차 열쇠를 정상에 세워둔 차에 두고 왔다고 한다. 기가 막힌 시간이 흐른 후 최선의 선택은 유명산 입구까지 내려가서 차를 빌어 정상의 차를 가지러 가는 것. 앞으로 내려갈 다운힐을 생각하니 모두 동의한다. 신나는 어비계곡 다운힐이 이어진다.
유명산은 전술한대로 다운힐보다는 업힐로 유명한 산이다. 몇 번의 업힐대회도 열렸고, 많은 라이딩이 업힐 위주로 행해진다. 그러나 다운힐로의 전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변 임도와 연계하면 코스 다양해져
유명산 자체의 라이딩 코스가 유명하나, 주변 산과 연계해서도 좋은 코스가 많다. 갈현에서 어비계곡과 상류쪽의 좌측 길로 고개를 넘어서면 흥국사로 연결되는데, 흥국사에서 산음 자연휴양림쪽으로 철탑공사를 하며 낸 산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 임도를 따라가면 산음의 성현고개에 이르는데, 이 고개를 넘어가면 산음 자연휴양림의 일주코스(약 40km)와 만난다.
또 성현고개에 이르기 전 고개의 시작부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묵안리를 통해서 설악~유명산~농다치고개에 이르는 도로상의 LG주유소 앞으로고 간다. 이 주유소 앞에서 좌회전해 4km 정도 달리면 다시 유명산 입구인 가일리에 이른다.
이렇게 유명산의 연결 임도를 이용하면 이번에 필자와 동료들이 내려온 다운힐 코스 외에도 상당히 긴 여러 코스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묵안리 국수터 위의 흥국사는 점심공양시간에 맞춰 가면 라이더들에게 푸근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유명산을 출발해 LG주유소 앞에서 우회전, 묵안리로 들어가 산음 자연휴양림까지 갔다가 흥국사로 와서, 다시 갈현으로 넘어와서 어비계곡을 통하여 유명산 입구로 내려오는 코스, 양평쪽에서 들어와 설매재 휴양림으로 오르는 업힐 위주의 코스, 어비계곡 입구에서 오로지 유명산 정상으로 업힐 라이딩도 추천할 만하다. 겨울철 심설 라이딩도 좋은데, 누구도 지나가지 않은 두터운 눈길을 자전거 흔적을 남기며 가는 것 또한 좋다. 겨울철이면 더욱더 인적이 없는 코스다.
이렇게 유명산은 여러 스타일과 그에 맞는 여러 코스를 겸비하고 있다. 또 유명산 정상에서 양평쪽 남한강 조망 역시 뛰어나다. 유명산에서 다운힐하며 보니 설매재 휴양림 뒤로 난 임도가 있는데,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궁금해진다. 유명산과 양평, 그리고 농다치고개의 산들은 MTB의 계절을 맞아 라이더들을 부르고 있다.
찾아가는 길
설매재 휴양림쪽 업힐 코스 양평에서 설악면으로 넘어가는 농다치고개(한화콘도쪽)로 가다보면 우측에 LG주유소가 보인다. 이 주유소를 지나자마자 다리를 건너면 사나사쪽으로 우회전 표시가 되어 있다. 여기서 우회전해 사나사가 아닌 설매재 자연휴양림쪽으로 올라간다. 이윽고 배너머고개에 이른다.
농다치고개~유명산 입구 코스 양평에서 설악면으로 넘어가는 농다치고개로 가다보면 한화콘도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악도로에 접어든다. 약 8km의 고갯길을 넘으면 농다치고개 정상에 이르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유명산 입구 팻말이 보인다. 우회전해 조금 더 가면 유명산 입구와 자연휴양림에 이른다. 이때 우회전하자마자 좌측으로 어비계곡 입구가 보인다.
/글·사진 김종수 www.alpongs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