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이 매우 많다. 단연 압도적인 것은 매봉 혹은 매봉산으로 700여 개나 헤아린다. 그외, 백운산이나 백운봉도 수십 개 된다. 달바우, 혹은 달바위도 많지만, 봉이나 산까지 된 경우는 드물다. 대개 달바위는 크기가 작은 바윗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와 석포리의 경계에 있는 달바위봉은 그러므로 봉이란 말이 붙은 것만으로도 그 크기가 유별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봉화의 바위산으로는 청량산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달바위봉은 산세와 규모가 그 청량산만은 못하지만, 산행하는 재미만큼은 청량산 근처까지 간다고 할 멋진 바위산이다. 해발 약 900m선의 기저부부터 1,073m의 정상까지 암부만의 높이가 무려 170m에 달하는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섰는데, 저기 진안의 마이산과 형제간이라 해도 좋을 만큼 먼 발치에서의 외양이 흡사하다.
진안 마이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맨 바위로 불끈 치솟은 암봉미가 자랑이라면, 달바위봉은 붉은 층암절벽의 곳곳에 불그스레한 줄기를 가진 귀족 소나무인 황장목이 장송으로 솟은 풍경이 자랑이다. 유명하기로야 단연 진안 마이산이지만, 두 산 중 어느 것의 풍치가 더 나은가란 질문에는 빠른 대답이 쉽지 않다.
진안 마이산이 그렇듯 달바위봉도 주변에 별다른 암봉이 없다. 그래서 마이산처럼 달바위봉도 두드러져 보인다. 태백산릉에서도 이 달바위봉은 금방 눈에 띄는데, 위에서 내려다보이므로 둥두렷한 달이 아니라 여러 산릉을 둥지 삼고 놓아둔 동그란 알처럼 불거져 보인다. 그러므로 알바위봉이라 해서 큰 무리 없을 산봉이다.
달바우란 이름은 대개 달을 닮았거나 혹은 달맞이를 하는 바위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곳 봉화 달바위봉은 필경 달을 닮았다는 뜻일 것이다. 언감생심 이 산봉 정수리에서 달맞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빙 둘러 가파른 절벽을 타고 달바위봉 정상에 오르기란 약초꾼 중에도 바위 타는 재주가 특출났던 극소수의 몇몇 사람에게나 가능했을 터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든 이 산봉 정상에서의 달맞이가 가능해졌다. 최근 곳곳의 가파른 절벽지대에 쇠사다리와 로프 등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이제 추석이 낀 9월이다. 달바위봉에 올라 솔향내 섞인 시원한 소슬바람을 맞아보자. 랜턴 쓰고 내려올 작정을 하고 정상에 올라 달맞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달바위봉 산행길은 단순하다. 정상 서쪽 계곡의 월암사에서 시작해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월암사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봉우리 북쪽 너머로 내려가 정법사로 하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법사쪽의 봉우리 하산길이 너무 위태스러워 별로 권할 만하지 않다. 이번 취재시엔 봉우리 북쪽 너머로 내려가 우측(남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빙 돌아보았으나 다시 원점인 월암사로 내려가는 길이 없어서 잡목 속에서 고생만 했다.
태백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다 보면 육송정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 소천 방면으로 5km쯤 가면 왼쪽으로 깊숙한 계곡과 그 초입에 자리잡은 월암 마을이 뵌다. 이 계곡 안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태백성산교회와 문수사란 절 사이를 지나 오르노라면 길 왼쪽에 '←월암사'란 작은 팻말과 더불어 샛길이 나온다. 이 길을 끝까지 따라 오르면 월암사다. 월암사는 아직 절의 외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절이라기 보다는 산중의 민가 같은 분위기다. 달 월 자, 바위 암 자를 쓴 월암사(月巖寺)란 절 이름은 물론 달바위봉에서 가져온 것일 터다.
절 뒤켠에 마치 소인국의 그것처럼 자그만한 대웅전과 산신각을 갖추어 두었는데, 그 우측 옆으로 월암봉 오름길이 나 있다. 절 마당까지 소형차는 들어갈 수 있으나 대형 버스는 진입과 회차가 모두 어렵다. 소로로 접어들면 숲그늘 속이다. 길은 뚜렷하다. 그간 여러 산악회들이 다녀갔는지 리본도 여러 개가 매달렸다.
절을 떠나 5분쯤 뒤, 망가져서 X자로 꼬인 나무다리가 나온다. 밑이 급경사이므로 조심스레 지나야 한다. 얼마 후 '월암봉 0.7km' 안내팻말이 선 작은 공터에 다다른다. 누군가 0.7km의 0자를 긁어서 지워놓아, 7자만 남았지만 7km가 아니라 0.7km다. 이곳 공터에서 소나무 사이로 달바위봉이 바라뵈는데, 고개가 뻐근하도록 제껴야 할 정도로 높직하게 치솟아, 초행인 이는 누구든 "멋지다!"고 한 마디 내뱉게 마련이다. 봉우리는 두 덩이로 나뉘었는데, 구분을 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왼쪽을 암봉, 우측 봉을 숫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을 떠난 지 20분쯤 뒤 길이 가팔라지며 굵은 동앗줄이 길게 매어져 있다. 참나무숲이 짙어서 따가운 가을 햇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구슬땀이 돋을 즈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좁은 잘루목에 올라선다. 오른쪽 옆을 보니 숫봉의 암벽이 거대하게 치솟았다. 암·수 마이봉 사이의 안부에서 보는 숫마이봉쪽 모습과 흡사하다.
안부 바로 너머에는 '월암봉 2km' 안내판이 섰다. 물론 실제는 0.2km다. 길은 암부 밑둥을 따라 북사면으로 돌아 나아간 다음 두터운 진초록 이끼가 뒤덮인 협곡 사이로 이어진다. 협곡은 음습하고 가팔라, 역시 굵은 동앗줄이 매어져 있다. 이 협곡 구간 상층부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짤막한 사다리도 놓여 있다. 이 다리도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어느새 절벽 중턱이다.
다음은 긴 쇠사다리. 이 사다리가 없었다면 바위꾼들이나 달바위봉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다리 위는 기막힌 조망처다. 돌무지가 쌓여 있고, 그 옆 소나무 그늘은 시원한 바람이 오간다. 우정 도시락을 싸가서 먹을 요량이면 이 자리가 적격이다.
소나무 그늘 앞의 평평한 암부로 나서면 층암절벽과 거기에 뿌리내리고 자란 아름드리 황장목들이 기관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 절벽이 많고 소나무도 많지만, 이렇게 가파른 암벽에 이렇듯 잘 생긴 황장목들이 곳곳에 서서 기경을 이룬 곳은 여기 달바위봉 이외 생각나는 곳이 없다.
중턱인 이곳의 조망이 이렇게 좋으니 저 위 정상은 어떨까. '←이쪽입니다'란 산오름산악회의 작은 팻말을 따라 밧줄을 잡고 암벽과 암릉길을 올랐다. 10여 분 뒤 경사가 죽더니 잦아드는 무덤이 누운 평평한 공터에 이른다. 이 무덤은 이 산봉에서 석이버섯을 따다 떨어져 죽은 처녀의 것이라고도 하고, 저 아래 월암사 스님 것이라도 한다.
무덤 자리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달바위봉 암봉의 정상이다. 작은 정상비석 옆으로 올라서니 사방이 빙 둘러 툭 트였다. 주변 산들의 덩치가 대개는 이 달바위봉보다 더 크고 높아서 중첩한 산릉의 아름다움을 덜하지만, 홀로 우뚝한 암봉이어서 시원스러운 맛은 저 멀리 태백산이나 함백산보다도 낫다. 정상비석 동쪽, 남쪽 모두 아찔한 급경사 절벽이어서 내려다보노라면 오금이 저려온다. 남쪽 바로 앞의 숫봉과의 사이는 도끼로 내리찍은 듯 급준한 협곡이다.
내려가는 길에 무덤 서쪽으로 나가보자 정상비석 근처보다 훨씬 더 넓고 편한 암반이 나온다. 그러니, 수십 명이 단체로 산행을 가더라도 정상 일원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오름길보다 더 까다롭다. 바위산에서는 더더욱 길 찾기도 그렇고, 발길도 더 위태스러우니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한다.
무덤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리본이 여러 개 달린 갈림길이 나 있다. 이 길로 가면 달바위봉 동사면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암봉 내려가기가 만만치 않다. 요소마다 리본이 매달려 있고 밧줄도 설치돼 있지만, 월암사쪽 길에 비하여 매우 위험하다.
암부를 내려서서 동쪽으로 300m쯤 가면 길이 두 가닥으로 나뉜다. 이중 왼쪽으로 가면 정법사길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이번 취재시엔 남서릉으로 가다가 원점인 월암봉으로 되내려가는 길을 찾아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았고 경치도 신통치 못했다.
월암사에서 오르고 그대로 되내려올 경우 산행 시간은 놀며 쉬며 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다만 주말에 등산객들이 많을 경우는 길이 외길이고 좁아서 조금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