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의 내외변산을 나누는 산줄기의 그 무수한 산봉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르는 산봉은 단연 관음봉과 세봉이다. 이 두 봉이 어깨를 곁고 이룬 산릉이 전국적 명찰인 내소사를 감싸안고 있기 때문은 물론 산행 중에 뵈는 풍광의 수려하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산행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소사 입구 일주문에서 출발, 관음봉 삼거리~관음봉~세봉~세봉 남릉으로 하여 일주문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식 산행을 권할 수밖에 없다. 저기 직소폭이나 월명암쪽으로 빠질 수도 있지만, 차를 둔 곳까지 되돌아오려면 너무 번거롭다. 직소폭포로 갔다고 해서 이 겨울엔 별 경치가 없으며, 월명암까지는 다소 지루하고 갈림길도 많은 숲속 능선길이다.
일주문 원점회귀코스는 지도를 보면 두어 시간이면 휙 돌아내려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돌투성이 바윗길이라서 그리 만만치 않으니, 5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잡아둔다. 중간에 샘은 물론 없으므로 식수는 가져가고, 바윗길이니 마찰력이 좋은 등산화로 준비한다.
일주문 앞 매표소를 지나 내소사를 향해 전나무숲길을 가노라면 중간에서 왼쪽으로 관음봉 삼거리 빠지는 길이 나온다. 직소폭, 관음봉 삼거리 방향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주말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지, 서로 등을 떼밀며 올라가는 것 같다. 통나무로 단을 지은 계단길에 추월하기도, 제자리에 서 있기도 뭣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산비탈을 지나 능선 위에 올라선 뒤로도 쉴 곳은 마땅찮아서 그대로 걸어오른다. 이윽고 세봉 정상부가 바라뵈는 널찍한 암반 쉼터에 올라선다. 암반의 태반을 사람들이 뒤덮고 있다. 여기도 쉴 곳이 아니어서 조금 더 올라가자 숲그늘 속 삼거리다(일주문을 떠난 지 30여 분). 왼쪽이 직소폭, 오른쪽이 세봉 가는 길인데, 이곳에서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사람이 왼쪽 직소폭으로 넘어간다. 그 많은 인파의 십중팔구가 단체 산행객으로, 대절 버스를 저기 직소폭 아래로 오라 하고는 넘어가는 것이다.
오른쪽 세봉 가는 길로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산이 조용해진다. 길은 능선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선 북사면의 계곡으로 잠시 내려섰다가 관음봉 북사면을 가로지른다. 직각으로 모서리에 각을 세운 주상절리가 이룬 잿빛 암벽 아래의 쇠난간 구간을 지나자 널찍한 공터가 길 왼쪽 저편에 뵌다. 거기에 수십 명이 앉아 이미 점심을 먹고 있다. 공터의 끝은 두루뭉실하니 휘다가 곧 가파른 절벽이 된다. 여기로 어린 아이가 폴짝거리며 뛰어가자 아이 엄마가 기겁을 하며 뛰어온다. 저 아래로 부안호수와 직소폭포가 있는 계곡들이 빤히 들여다뵈는 전망 좋은 암반 끄트머리에 앉아 간식 후 관음봉 정상 길로 접어들었다.
옹색하게 좁고 숲도 우거진 관음봉 정상에는 출입을 못하게끔 난간을 쳐두었다. 그 난간 안의 숲지대에 몇 사람이 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암릉 위로 줄지어 가는 등산객들
동쪽 저편으로 커다란 암괴와 그 위를 가는 등산객들이, 오른쪽 아래는 은행나무가 선 청련암 지붕이 빤히 내려다뵌다. 관음봉부터는 바위지대가 많으므로 안개가 끼었을 때는 족적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희게 벗겨진 부분을 따르면 대개 틀림없다.
관음봉 삼거리와 가마소 삼거리 갈림길목임을 알리는 팻말이 섰고 작은 암괴가 자리한 곳이 세봉 정상(N 35 37 24.6 E 126 35 18). 전혀 산봉 같지가 않고, 그저 불룩하니 돌출한 능선의 일부 같다.
가마소 삼거리쪽으로 가다가 세봉에서 약 300m 지점의 안부에 이르러보니 사람들이 오른쪽 아래로들 내려간다(N 35 37 25.0 E 126 35 24.1). 별다른 표식은 없지만, 청련암으로 하여 내소사로 빠지는 길로 애용된 지 오래라고 한다. 여기서 청련암까지 내려가 보았다. 찻길이 암자까지 닿아 있고, 그 길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암자를 보고는 다시 능선으로, 꼬박 10여 분 숨이 턱에 닿도록 걸어 올라갔다. 내소사계곡 동쪽 능선길 풍경이 좋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여서다. 200m쯤 가다가 ‘←관음봉 삼거리 2.2km, 가마소↑, 내소사 2.3km→’ 팻말이 선 곳에서 내소사 방향 능선으로 내려섰다. 참으로 이 길을 택하길 잘했다 싶은 것이, 장송과 기암 어우러진 조망처가 연달아 나타났기 때문이다. 변산에서 이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능선이 또 있을까 싶다.
능선엔 119 구조대 팻말, 공단 이정표 등이 간혹 서 있고 별다른 갈림길도 없으므로 길이 헷갈릴 염려가 거의 없다. 다만 양쪽으로 등산로 아님 표식이 돼 있는, ‘←가마소 3.3km, 내소사 1.2km→’ 팻말이 있는 곳 직후에 V자로 길이 나뉘는데, 우리는 왼쪽을 택해 내려갔다. 그러나 나중에 일주문 매표소 바로 옆 ‘입산금지. 위반시 과태료 50만원’ 플래카드가 걸린 곳으로 내려가게 되어 매우 민망스러웠다. 그러니 V자 길목에서 오른쪽의 약간 희미한 길로 내려가기 바란다. 필경 지장암 근처로 이어지는 길이지 싶다.
곧장 남릉을 따라 내려가노라니 세봉이 대단한 웅장미를 보이는 조망처가 또한 나타나 하산길을 더디게 했다. 그 암부의 끝부분에 또한 팻말이 있었고, 얼마 후 일주문으로 내려서려다가 왼쪽 지능선으로 하여 우리가 짐을 둔 정든민박집 뒤로 내려갔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에 하산을 마쳤으니 예상보다 무척 많이 걸린 셈이다. 곳곳마다 경치가 너무 좋았던 탓이 가장 크다.
◈ 숙박
내소사 입구 입암 마을은 전통마을로 선정된 곳으로, 허리춤 높이의 옛 돌담이 잘 보존돼 있어 동네가 정겹다. 10여 호 민박 중 두어 집이 강추할 만하다.
정든민박 집을 아기자기하고 정겹게 꾸몄다. 마당에서 모닥불을 땔 수 있으며, 땔감도 거저 준다. 원래의 집 앞에 황토방집 별채를 새로이 꾸몄으며, 이 집만의 주차장이 바로 옆이다. 숙박료는 25,000~30,000원. 전화 063-582-7574.
마당바위민박 주차장이 집 바로 옆이고, 마당에서 돌판구이를 할 수도 있다. 방은 화장실이 따로 있는 구식이나 아늑한 맛이 있다(063-582-7582).
모텔여정 최근 지은 모텔로 방이 깔끔하고 욕실이 딸려 있다. 평일 30,000원, 주말 50,000원(063-583-5767).
이밖에 구룡산장(063-582-7264), 내소민박(582-7427), 향죽민박(582-7372), 초원민박(582-7608), 중앙민박(583-6196), 산촌민박(582-6799), 용문민박(583-7939) 등이 있다.
◈ 먹거리
내소사 입구에 초원식당(063-581-1077), 전주식당(063-584-9090) 등 음식점이 여러 개소 있다. 찌개백반류가 대개 5,000원 선. 아침식사도 사전 주문하면 된다.
/ 글 안중국 차장 tksdkr@chosun.com
/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hotmail.com
내소사
오랜 노거수들로 둘러싸인 고찰
내소사(來蘇寺)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나면 나는 대로 사람을 오랫동안 묶어두는 매력을 가진 절이다. 오랜 노거목들만으로도 내소사는 한번 찾아볼 만하다.
일주문부터 길게, 흐린 날이면 금방 저물어 어둠이 내릴 것처럼 짙은 전나무숲길을 지나면 문득 거대한 나목의 검은 윤곽선이 세봉 높은 산릉마저도 꿰며 앞을 가린다. 백제 무왕 33년(633년) 창건 당시에 이미 저 거목은 심어졌을 것 같다.
여러 당우들을 뒤로 거느린 듯 마당 가운데 붙박고 선 거목 주위를 맴돌다 단을 올라서면 오랜 풍상의 흔적이 여실한 아름드리 벚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저기 사천왕문까지 도열했다.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 저 위, 대웅보전 기와지붕의 골이 빗물에 젖어 외려 더 선명하다. 담장 바깥 숲속엔 가을비에 진노랑 낙엽들이 한 치 빈틈없이 땅을 뒤덮고 있다.
한창 불교가 성할 때 변산엔 크고 작은 사암이 무려 800개가 넘었다고 한다. 변산이 어염시수(魚鹽柴水) 곧 소금이나 땔나무 등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풍부하고 질 좋은 목재가 많았던 덕이다. 하지만 숱한 전란을 겪는 동안 이제 거찰이라면 내소사만 남았다. 대웅보전 이외 설선당, 봉래루, 관심당 등 여러 전각이 보수, 신축돼 대찰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뒤에 기암봉 세봉 능선이 좌우로 팔 벌려 감싸안듯하여 절 뜰 안에 가만히 서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변산에 와서 이 내소사 말고 또 어디를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