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산행을 위한 요리] 돼지고기 떡조림 & 쇠고기 무국

한겨울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등지고 누워 있다가 어머님이나 아내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으며 휴일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배낭을 짊어지고 터미널로 향하는 일만큼 가슴 뿌듯한 일도 없다. 집안 식구들을 위해 돈을 벌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때로는 비장함마저 감돌곤 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잠시 선잠을 자다가 깨어 흰 옷으로 갈아입은 겨울산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고 새로운 힘이 생길 것이다. 특히 겨울산 중에도 1월 초에 가는 신년 산행이야말로 이것의 진수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 벅찬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이겨내야만 한다. 또한 음식이 다 익기까지 견뎌야하는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산만큼 조리 여건이 힘든 산도 없지만, 거기에 조리시간까지 길어져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 된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준비에 준비를 더해 조리시간을 줄일 수 있는 요리 재료와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떡조림이 엄동설한에 핀 꽃이라면 한겨울에 먹는 무국은 빛과 소금

이번 달에는 짧고 간편한 조리법으로도 한겨울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맛있고 재미난 요리를 준비해 보았다. 돼지고기 떡조림은 중량과 조리시간, 요리 방법에 있어 겨울산행에 아주 효과적인 요리다. 우선은 흰떡이 많이 들어가므로 밥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떡을 데워 먹는 것이므로 조리시간도 매우 짧다.

먼저 코펠에 고기를 넣고 볶으면서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다. 그리고 고기가 익을 무렵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양파와 마늘은 집에서 미리 손질해 가면 아주 편리하다. 그런 다음 준비된 새송이 버섯과 매운 고추를 넣는다. 고기가 다 익을 때쯤 떡을 넣는데, 경험상 떡은 약간 두툼한 것이 좋고,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보다는 동네 방앗간이나 떡집에서 파는 것이 맛있다. 굵은 것이 없다면 얇은 떡볶이 떡도 괜찮고, 떡국을 하기 위해 썰어놓은 것을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다.

떡이 반쯤 익었을 때 간장을 넣는데, 수저에 조금씩 담아 맛을 보며 넣어야 한다. 떡도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고, 고기도 밑간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간장 조절만 잘 하면 이 요리의 반은 성공한 셈이 된다.

요리가 거의 다 되면 파와 꿀을 넣고 버무려 주는데, 꿀은 이 요리의 모양새와 맛을 배가시켜주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꿀을 발라 김과 윤기 나는 떡조림이야말로 엄동설한에 핀 꽃 같은 존재다.

떡조림이 흰 눈 속에 핀 꽃 같은 존재라면, 한겨울에 먹는 쇠고기 무국은 빛과 소금 같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주 소중한 요리다. 조리과정이 단순하고, 짧은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나, 전날 과음한 등산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리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등산인들이 이 요리가 무슨 산요리냐고 묻지만, 이것이야말로 조리시간, 조리과정, 뒤처리 면에 있어서 다른 산요리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이 요리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무다. 한 겨울 땅속에 묻어 놓았다가 꺼내먹는 무만큼 단 것도 없기 때문에 겨울에 무가 들어간 음식은 다른 계절에 비해 그 맛이 뛰어나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서 가장 먹음직스런 무를 골라 인원에 맞게 잘라 가지고 가면 되는데, 맨 윗부분부터 차례로 자르는 것이 좋다. 양파와 마늘, 그리고 무와 고기는 당연히 집에서 미리 손질해 비닐 봉투나 밀폐 용기에 담아 가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

이제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요리를 시작해 보자. 먼저 코펠에 고기를 넣고 볶으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고기가 반 이상 익었을 때 물을 붓고 끓인다. 그런 다음 얇게 썬 무를 넣는다.

무를 얇게 썰수록 조리시간이 단축되지만 너무 얇게 썰면 맛이 떨어지므로 2mm 정도가 적당하다. 이것을 한소끔 끓이다가 양파와 마늘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새송이 버섯을 넣고 2분간 더 끓이다가 다진 파로 마무리하면 요리는 완성이다.

경험상 한겨울 종주산행이나 빙벽등반을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무를 때 이 요리는 그 때 그 때 위력을 발휘해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다. 조리가 간편하고 완성도 높은 맛을 내주기 때문이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등산인이라면 이것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어도 아주 좋고, 찬밥이 남았다면 아예 말아 끓여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이것은 기름기가 많이 생기거나 시뻘건 양념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뒤처리도 매우 간편하고, 큰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뜨겁게 데워 보온병에 가지고 다니다가 차처럼 먹어도 좋은 매력적인 산요리다.

무는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이자 디아스타아제 섞인 소화 촉진제

무는 배추·고추와 함께 우리나라 음식에 쓰이는 3대 채소다. 큰 원주형 뿌리의 윗부분은 줄기지만,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원산지에 대해서는 지중해 연안이라는 설, 중앙아시아와 중국이라는 설, 중앙아시아와 인도 및 서남아시아라는 설 등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비문(碑文)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재배 시기는 상당히 오랜 듯하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400년부터 재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던 듯하나,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에 중요한 채소로 취급된 기록이 있다.

이것은 날것으로 먹거나 익혀서 먹는 등 그 이용 범위가 매우 넓다. 또 썰어서 말리거나 잎을 말려서 이용하는 등 우리나라 사람의 식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성분상의 특징을 보면 뿌리 부분에 소화효소 아밀라아제와 비타민C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 아밀라아제와 비타민C는 열에 약하여 파괴되기 쉬우므로 날 것으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식초는 아밀라아제의 활성을 저해하므로 함께 요리하지 않는다.

작은 무와 열무는 샐러드에 이용하고 남지무는 단무지나 무말랭이로 이용하며, 김치의 재료로 많이 쓰이는 것은 저장성이 좋은 북지무다. 특히 무의 잎에는 먹을 수 있는 부분 100g 중에 칼슘 210㎎, 카로틴 2600μg, 비타민B 0.13㎎ 등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적으로 우수한 녹황색 채소다. 재래 품종 중에는 잎만 이용하는 품종도 있다. 요즘은 생야채로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날것으로 먹기도 하며, 하우스 내에서 대량 생산하여 1년 내내 판매하고 있다. 무의 씨앗에서는 식용기름을 얻는다.

가을 무는 잎을 제거하고 가마니에 넣으나, 봄 무는 잎과 같이 수확한다. 재래종의 경우 얼지 않도록 흙 속에 움 저장을 하면 다음해 봄까지 저장이 가능하다. 무에는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어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뿐만 아니라 뿌리에는 디아스타아제라는 효소가 들어 있어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는 김치·깍두기·무말랭이·단무지 등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씨는 거담제 및 건위제로 약용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한 겨울의 무맛은 다른 계절의 그것을 압도하기 때문에 필자는 겨울만 되면 항상 이것을 챙긴다. 맛도 훌륭하지만 거의 모든 요리에 이것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재료를 바꿔가며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리산 종주를 위해 장을 보다가 무척이나 탐스러운 무가 있기에 큰 놈으로 골라 배낭에 담았다. 산행 내내 빨리 저녁이 되어 맛있는 무 요리를 먹고 싶은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산행했다. 헌데, 매 끼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미리 손질해 온 무를 꺼내놓는 바람에 칼 한 번 대지 않고 산행을 마쳤다. 솔직히 두세 끼니 지나고나니까 그만 이것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무거운 겨울산행 채비였지만 배낭 맨 밑에 깔린 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이윽고 산행을 마치고, 서울 오는 막차를 놓쳐 민박을 잡았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는데 한 선배가 무언가를 찾느라고 필자의 배낭을 거꾸로 쏟다가 그만 이것에 발가락을 찍어버렸다. 크기도 컸지만 그 무게는 몇 날 며칠을 걸어 기진맥진해진 발가락을 사정없이 눌러버렸다. 그 선배의 발가락은 검게 변해 버렸고 서울로 올라와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덕분에 그 선배는 미리 장만해 둔 빙벽장비를 보고 겨우내 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필자는 덕택에 신형 장비를 가지고 빙벽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다시는 무를 통째로 가지고 다니는 법은 없지만, 어째든 한겨울에 먹는 무 요리는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요리임에 틀림이 없다.

/ 글·요리 한형석 한국산서회 회원 hshan@kolon.com

/ 사진 정복남 기자 bnchung@chosun.com

/ 영양가 자문 김소영 영양사 ksy0946@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