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맛따라] ‘하늘이 이 시대에 내려준 선물’ 콩의 참맛

기찻길 만덕산 산행계획을 한 번 짜 본다. 아침 6시50분 용산역에서 떠나는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열차는 전주역을 지나 14분 후인 오전 10시32분 죽림온천역에 선다. 기차가 달리던 방향 기찻길 왼쪽에 펼쳐져 있는 산이 만덕산이다. 만덕산은 크게 알려져 있는 산은 아니다. 그렇지만 명산 중의 명산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을 산이다.

만덕산은 죽림온천역에서 내려 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철저한 등정주의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정상을 올라야만 할 이유는 없다. 2시간 정도 가볍게 산행을 즐기고 원점으로 내려오면 태고의 약수가 솟는 죽림온천이 기다리고 있다.

죽림온천은 죽림온천역에서 도보로 3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죽림온천 10일이면 10년은 젊어진다’는 홍보 글귀가 걸려 있는 죽림쿠어하우스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식도락까지 즐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 오후 4시22분 용산행 귀환열차를 타면 오후 8시16분 용산역에 도착한다. 짭잘한 하루의 온천욕 열차산행이 되겠다.

죽림온천에서 3시간만 머무는  것이 아쉬운 사람은 더 머물어도 좋겠다. 오후 6시30분까지 운행하는 온천→전주시내 정기운행버스(무료)를 이용해 전주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오면 전국 각지로 닿을 수 있는 교통편이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전이나 충청권, 전라선 역세권 산꾼들이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멋진 열차산행코스다.

다향 ㅣ 창밖은 365폭의 한국화

예향(藝鄕) 전주의 풍류와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풍남동 교동 일대 한옥 전통가옥마을로 가본다. 작가 최명희의 생가와 소설 혼불의 전주최씨 종택이 이곳에 있다. 또 한 곳, 학인당은 전통 기와집의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주시는 이곳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여 옛 모습을 정비하고 다양한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전주한옥마을’로 조성해 놓았다.

이곳 한 켠 넓은 터에는 잘 지은 전주전통문화센터가 있는데, 건물 2층의 전통찻집 ‘다향(063-280-7088)’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차향기 가득한 찻집은 등산화를 벗고 들어가야만 했다. 다모(茶母)가 방석을 내놓으며 앉기를 권하는데 감미로운 음악이 예사롭지 않다. 교양미 철철 넘치는 다모 성혜숙(成惠淑) 여사가 주문 받기에 앞서, 시원한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창밖은 하루 하루가 다른 색깔로 펼쳐지는 365폭의 한국화”라는 설명을 해 준다. 창밖 전주천 건너편, 가까운 곳에는 남고산성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 한쪽에는 치명자산 성지가 보인다.

실내는 전통찻집에서 흔히 듣는 우리의 가락과는 달리 잔잔한 고전음악이 계속 흘러 나왔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라고나 할까. 다모 성 여사의 오랜 체험에 의하면 우리 전통의 전통찻집에서는 우리의 고전가락보다 잔잔한 서양의 고전음악이나 우리의 가요가 분위기를 훨씬 더 돋운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선곡하여 자신이 직접 편집한 CD로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했다.

유리창 바깥은 눈 내린 차가운 날씨, 따끈한 쌍화차 한 잔 마시는데 실내를 울리는 음악은 로시프 코브존이 부른 ‘백학’이었다. 탁자 주변에 둘러앉은 일단의 손님들을 살펴보니 ‘모래시계’를 즐겨 시청했던 세대인 것으로 보였다.

한벽루 ㅣ 미향 전주의 맛 모두를 한 곳에서

미향(味鄕) 전주의 맛은 세상이 다 알아준다. 전주에서 이 맛을 골고루 즐기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아침에는 콩나물국밥, 점심에는 전주비빔밥이나 돌솥밥, 이것은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 전주에서의 먹거리 코스 전형이고, 전주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음식점들은 이들 음식들 중 한 가지만을 차려내는 전문점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전주전통문화센터에 있는 전통음식관 ‘한벽루(063-280-7082)’에서는 이들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유기비빔밥과 돌솥비빔밥(각 9,000원)을 먹을 수 있는데, 어린이들에게는 어린이비빔밥(4,000원)을 차려내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참게장백반·불갈비정식·한벽류정식(각 15,000원×2인), 추어탕(8,000원)에 한정식(30,000원×4인)을 차려낸다.

계절음식으로 차리는 사골떡국(9,000원)이 최고의 인기라는데, 설날(구정)에는 특별행사로 이곳을 찾는 손님 모두에게 이 음식을 대접(무료)한다고 했다. 해마다 500그릇 정도를 차려냈다는 설명이다. 전통음식자료 전시실과 조리체험실까지 갖추고 있는 이곳 전통음식관에서는 폐백 강좌, 전주팔미 강좌, 조리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전통음식 전수스쿨도 열어 놓았다. 특별기획행사로 ‘김치 담그는 날’, ‘엿 곱는 날’, ‘식혜 담그는 날’, ‘젓갈 담그는 날‘도 정해 놓았다.

주방요원 7명을 거느리고 조리해 내고 있는 주방책임자 진귀호(陳貴鎬·53) 여사는 해마다 메주콩 10가마 분량의 간장과 된장을 직접 만든다. 집안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음식솜씨를 전수 받았다는 진 여사는 ‘옛 것은 옛 것 그대로’ 라는 신념으로 조리에 임한다고 했다.
전주한옥마을 안, 전주의 맛을 골고루 맛볼수 있는 한벽루와 상차림.

화순집 ㅣ 향수의 천변에서 오모가리탕

천변에서 먹는 오모가리탕이라? ‘오모가리’라는 물고기가 있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다. 오모가리에다가 민물고기탕을 끓여낸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을 전주에서 보내고 출향(出鄕),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전주 사람들에게 한벽당이 있는 전주천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한벽당은 승암산 기슭 발산머리의 절벽을 깎은 자리에 세운 누각으로, 전주8경의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晴煙·한벽당 아래 피어오르는 푸른 물안개)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곳 천변에는 그 때 그 시절부터 전주천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로 탕을 끓여 팔던 음식점들이 ‘50년 전통’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지금도 영업중이다. 이들 집 중에서 ‘화순집(063-284-6630)’으로 들어가 봤다. 집주인 김종희(56)씨는 자신의 집을 출향인들의 ‘향수의 고향’이라고 소개했다. 명절 때가 되면 객지로 나갔던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더 바쁘다고 한다. 어릴 적 친구들의 모임 장소가 되고 회상과 회고의 광장이 된다고도 했다.

차려내는 음식은 예나 다름없는 민물고기인데, 워낙 인기가 높았었는지, 많은 시민들의 권유에 따라 지난해 여름에는 시내 중화산동에다가 분점(063-225-7766)까지 열었다는 자랑이다. 메기, 피라미, 새우, 빠가사리(동자게), 쏘가리로 탕을 끓여 내는데, 손님 인원수에 따라 분량을 달리 하고 값도 다르게 받고 있다.

전주천면 한벽당 부근의 매운탕 전문   화순집과 김종희씨.

미성식당 ㅣ 맛으로 승부를 건다

죽림온천에 가서 놀란 것은 국내에 알려진 명성에 비하여 중국쪽에서 연간 3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온천을 다녀간다는 사실이다. 최근 전북대 정보과학대학원에서는 53명의 시찰단이 일본의 뱃부온천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 온천에는 연간 한국인 5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하는데, 전북대 시찰단의 보고서에서는 한결같이 뱃부온천보다는 죽림온천이 월등하게 좋은 온천으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아전인수격이 아니라 죽림온천이 온천의 3대 요건이라는 수온, 수질, 수량 모두 우위에 있다는 보고다.

죽림온천에서도 미향 전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먹거리집이 몇 곳 있다. 그 중에서 온천에서 직영한다는 ‘미성식당(063-232-8753)’이야 빠뜨릴 수가 없겠다. 작은 규모의 식당인데 맛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업소다. 가정식백반을 위시, 청국장, 김치찌개, 된장시래기백반을 각각 5,000원씩에 차려내는데, 일행이 여럿인 경우 이것저것 섞어서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는 음식의 맛과 양에 모두가 흡족해 한다는 것이 업소 지배인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죽림온천은 17번 국도 상에 있고, 17번 국도에서는 가장 넓은 무료 주차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운전자들의 출입이 잦고 자연스럽게 이 식당을 자신들의 ‘기사식당’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 식당에는 별스럽게도 실내포장마차가 딸려 있고, 연회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넓은 노래방도 있다.
5,000원짜리 찌개백반이 일품인 죽림온천 미성식당.

화심순두부 ㅣ 독특한 맛 두부돈까스 전문

죽림온천은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다. ‘완주’ 하면 완주8경, 완주8품, 완주8미를 떠올리게 된다. 완주8미 중에는 ‘순두부백반’이 들어 있는데, 죽림온천에서도 완주8미 중 하나인 순두부를 먹을 수 있다. ‘화심순두부 죽림온천 직영점(063-287-8031)’이 바로 이 업소다.

이 직영점에서는 업주 김종인(47)-이희고(42)씨 내외의 회심의 작품이라는 두부돈까스(5,000원)를 먹을 수 있다. 본점에서도 차려내지 않는 이 음식에 대한 주인 내외의 남다른 정성으로 이 직영점의 대표음식이 됐고, 그만큼 찾는 단골들도 많다고 했다.
화심두부 2,500원, 순두부찌개 4,000원, 두부김치전골·두부빈대떡·해물파전·화심도토리묵 각 5,000원. 쇠고기두부전골 8,000원 x 2인. 음식을 먹어본 손님들이 포장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한다. 인접한 지역이 인삼 산지 진안이라 현지에서 갖고 온 인삼을 넣어서 담근 인삼모주(6,000원)와 인삼동동주(5,000원)를 됫박으로 내놓는다.

관광버스 4대의 인원 16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깔끔한 분위기로 나무랄 데가 없는 업소로 평가를 받고 있다. 업소 마당이 광활한 죽림온천의 주차공간(무료)이다.
독특하게 두부돈까스를 개발해낸 화심순두부의 김종인-이희고 주인내외.

온천돌담집 ㅣ ‘전주죽림맑은물식품’의 청국장찌개

죽림온천에서 남원 방향 500m 거리 좌측 17번 국도변에 ‘온천돌담집(063-232-8381)’이 있다. 장독대가 늘어선 이곳은 ‘청국장’으로 세상에 크게 알려져 있는 ‘전주죽림맑은물식품’이라는 식품제조업체이고, 온천돌담집은 이 업체에 딸린 작은 규모의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는 청국장찌개와 된장찌개(각 4,000원) 두 가지 음식만을 차려내는데, 이 찌개가 여느 식당들의 음식들과는 판이하다. 전주죽림맑은물식품에서는 ‘전통음식의 계승’이라는 기치 아래 ‘맑은물전통’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된장·고추장·청국장쌈장·청국장·간장 등의 장류를 생산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청국장이 첨가된 다양한 청국장 응용 식품들을 개발, 상품화를 시켜 놓았다. 볏짚에 있는 고초균(枯草菌·bacillus subtillis)이 삶은 콩의 콩단백을 분해하여 subtillin(서브틸린)이라는 항생물질을 분비한다는데, 서브틸린에 당신이라는 ‘you'를 합성시킨 subtiyou(서브티유)를 상표로 한 제품은 참으로 많다. 청국장이 첨가된 서브티유 김치가 있는가 하면, 청국장선식과 영양죽이 있고, 영양조미료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고 서브티유 잼과 분말, 환, 한과스낵, 영양양갱, 전병, 검정 노랑 파랑의 콩튀기, 베이커리, 아이스크림까지 참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제품들을 생산해 낸 주인공 ‘청국장의 마술사’ 정화자(鄭花子·57) 여사는 농촌진흥청 주최 전통장류대전 대상(2002.10)과 아름다운 우리농특산물 아이디어상품전 최우수상(2003.06), 2004 전주 맛장인 경연대회 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개발한 발효콩분말을 주성분으로 하는 음료와 이의 제조방법 등 수많은 품목을 특허출원해 놓고 있다. ‘하늘이 이 시대에 내려준 선물’이라는 그가 쓴 그의 시(詩)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분명 청국장은 / 하느님께서 온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콩으로 만들 수 있는 장류와 김치, 선식, 영양 조미료 등을 개발해낸   ‘청국장의 마술사’ 정화자씨.

반야돌솥밥 ㅣ 돌솥밥 최초로 개발한 집

미향(味鄕) 전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조선조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혔던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한정식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음식 돌솥밥을 빠뜨릴 수 없다. 돌솥밥은 돌솥에 갖은 재료를 넣고 즉석에서 밥을 짓고 갖은 양념을 넣어 비벼먹는 새로운 형태의 비빔밥이다. 푸짐한 야채 반찬이 따라 나오고 밥을 다 먹은 후에는 돌솥 안에 누른 누룽지를 긁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전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반야돌솥밥(063-288-3174)’의 업주 임복주(林福珠·55) 여사는 전국적으로 이 음식을 최초로 개발한 분으로 알려져 있고, 이 집은 전주에서 이 음식만을 차려내는 대표적인 업소로 손꼽힌다. 돌솥밥은 돌솥 하나 하나에 쌀과 갖은 재료를 넣고 가스불로 밥을 짓는 바, 한 사람 분의 음식을 차려내는 데는 원가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그런데도 1인분 한 상(床)에 6,000원을 받는다. 원가 계산상으로는 두 사람의 음식상을 차려야만 본전이 될법하다. 그래서일까. 이 집의 문전은 하루종일 성시를 이루고 어떤 때는 넓은 식당인데도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야돌솥밥의 ‘반야(飯野)’는 ‘들에서 나는 모든 곡식으로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 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