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ㅣ호남의 산] 팔영산

▲ 팔영산 암봉의 웅자.

호남정맥이 제암산, 사자산, 주월산을 지나면 존제산 못 미처 동쪽으로 고흥반도에 지맥 하나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이 지맥은 태봉, 장군봉, 봉두산을 거쳐 고흥 방향으로 천등산 줄기를 갈라놓고, 남동으로 뻗어 가다가 다도해 한가운데에 팔영산(八影山·609m)의 암봉을 솟구쳐 놓았다.

엄격히 따지면 8봉에서 동북쪽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깃대봉의 주봉까지 합치면 9봉이라 해야 옳다. 고흥반도에 기기묘묘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 오르면 너울너울 춤추는 다도해가 한눈에 잡히고, 청명한 날이면 대마도까지 보이는 스릴만점의 암릉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도립공원이면서도 안내도에는 제1봉(유영봉)서부터 제8봉(적취봉)까지만 표기해 놓고, 주봉인 깃대봉(제9봉)을 거쳐 영남면으로 가는 코스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산행인들이 제8봉을 거쳐 탑재~능가사나 팔영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게 된다.

▲ 제1봉인 유영봉 정상에 모여선 취재팀.

다행히 고흥사랑모임(회장 강영수·010-7766-6607)에서 깃대봉~영남면 소재지의 등산로를 잘 정비하고 이정표도 설치해 놓았기에 이 코스를 소개코자 한다. 깃대봉은 암봉인 제8봉에서 동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에 외로이 서 있고, 고흥경찰서 무선국시설이 들어서서 산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삼거리 흔들바위. 힘껏 밀어대자 미세하게 흔들렸다.

팔영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금사천에 합수되어 남해의 해창만, 북쪽은 강산천을 이루다가 순천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고흥군 점암면과 영산면에 위치해 있다.  

팔영산의 유래와 전설이 참 흥미롭다. 원래는 팔전산이었으나 중국 위왕이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를 보고 이 산을 찾으라는 어명을 내려 신하들이 조선의 고흥에서 발견, 그가 몸소 찾아와 제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 한편,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비쳤다 해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또 팔령산(八靈山), 팔형산, 팔봉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고종 때 흥양읍지에는 이 산에 유영봉, 군선봉, 성주봉, 천주봉, 별봉, 괄응봉, 일출봉 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1998년에 고흥군에서 봉우리마다 표지석을 세우고, 제1봉 유영봉, 제2봉 성주봉, 제3봉 생황봉, 제4봉 사자봉, 제5봉 오로봉, 제6봉 두루봉, 제7봉 칠성봉, 제8봉 작취봉이라 했으나 깃대봉인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고 두 동강 난 표지석이 중간지점의 전신주 옆에 버려져 있어 산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상에는 고흥사랑모임에서 이정표를 세웠고, 삼각점(고흥 No 11)이 있다. 우측에는 고흥경찰서 팔영산 초소와 시설물들이 자리 잡고 있으나, 다행스럽게 정상을 비켜 있어 영남면 소재지로 하산할 수 있다.

팔영산은 비록 해발은 낮으나 산세가 징검다리 같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쇠줄과 철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안전한 우회로가 있어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특히 팔영산 주위는 다도해 해변을 끼고 있어 남일 해수욕장과 해무를 안은 섬들이 장관을 이룬다.

개구멍바위 빠져나가자 눈앞에 다도해 펼쳐져

▲ 제6봉인 두류봉 정상.

백두대간 종주팀인 한종간(팀장), 국승문, 장식용, 김소환, 송재선, 양영이, 최은혜, 김영민씨가 산행을 함께했다.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하고 새 생명이 파릇파릇 대지를 수놓는 남녘의 최남단인 고흥반도에 위치한 팔영산 주변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걷자 커다란 안내도와 동쪽으로 기묘한 암릉이 한눈에 잡혔다. 곧이어 능가사의 일주문, 사천왕문, 웅장한 대웅전, 요사채, 응진당이 차례로 중생들을 맞이했다. 대웅전은 팔작기와지붕으로 규모가 웅장했고, 단청을 하지 않은 건축미가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비구니들의 도량인 이 사찰은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불리며, 한때 팔영산 자락에 40개 암자를 거느릴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 사찰의 범종을 치면 점암면 일대에 울려 퍼질 정도였으며, 일제 때 헌병대가 이를 욕심내 끌고 갔으나 종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능가사 돌담을 끼고 돌자 계곡 물소리가 정겹고 새파란 마늘밭과 대나무숲을 지난다. 팔영교를 지나면 비포장길이고, 후계당과 사영당 등 9기의 부도가 돌담 안에서 인사한다. 길 양측엔 주인을 잃은 휴경농지들이 줄지어 있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탑재와 제1봉으로 가는 갈림길엔 아낙네들이 입맛을 돋을 봄나물과 미나리, 채소들을 팔면서 카메라를 보고 멋지게 한 방 찍어달라고 농담을 건넸다. 제1봉 방향으로 오르면 좌측에 남도문화재연구원의 유적발굴조사지가 있고, 우측엔 팔영산가든이 다가온다. 동동주, 도토리묵, 토종닭을 판다는 안내판을 보자 저절로 군침이 돈다.

호젓한 숲에는 리본들이 만국기처럼 휘날린다. 너덜길이 시작됐고 물이 흘러 미끄러웠다. 40분쯤 가자 삼거리에 흔들바위가 버티고 있다. 힘껏 밀어대자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측은 제2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서 좌측 제1봉 방향으로 오르자 호젓한 숲길이 시작된다.

비석 없는 묘소 2기와 이정표가 선 곳에서 우측은 우회하는 길이어서 좌측 제1봉의 암릉 길로 접어들었다. 개구멍바위를 빠져나가자 눈앞에 다도해가 펼쳐지며 가슴이 탁 트인다. 쇠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면 제1, 제2봉의 중간기점인 갈림길이고, 남쪽에는 제1봉인 유영봉(491m)이 있다. 다도해를 바라보며 땀을 식히고 갈림길로 되돌아나와 가파른 철계단과 쇠줄을 잡고 제2봉인 생황봉(564m)을 올라섰다. 제3봉인 사자봉(578m)는 지척이고, 건너편엔 오도봉(579m)이 줄지어 서 있다.

▲ 두류봉 지나 암릉을 오르면 거대한 돌문이 양측에 버티고 서 있고, 굴 안에는 수도한 흔적이 있다.

암릉을 내려섰다가 철계단을 힘들게 오르니 갑자기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몸이 균형을 잃고 어지럽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났던 시각이었다. 제6봉인 두류봉에 올랐다가 사거리에 내려서니 이정표가 서서 동쪽은 자연휴양림(0.8km), 서쪽은 능가사(2.6km)이고, 칠선봉은 직진해야 한다며 교통정리를 해줬다.

8개 암봉이 멋지게 앵글에 잡혀

흙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또 다시 암릉을 오르면 거대한 돌문이 양측에 버티고 서 있고, 굴 안에는 수도한 흔적이 있다. 지리산을 오르듯 통천문을 통과해서 제7봉인 칠성봉(698m)를 올랐다가 내려오면 삼거리다. 서쪽은 탑재를 거쳐서 승가사로 가는 코스라서, 제8봉으로 직진했다. 낙남정맥 종주 때 많이 접했던 부산 국제신문의 근교산행 리본이 반갑게 인사했다. 바윗길을 올라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보니 제8봉과 다도해와 나로도를 잇는 연륙교가 한눈에 잡힌다. 장식용, 송재선씨가 다도해 위에 두 개의 젖무덤처럼 솟아오른 산을 가리키며 지리산 반야봉 축소판이라 했다.

적취봉(591m)에 올랐다 바위를 내려서니 이정표가 발길을 막아서며 산행이 끝났으니 동쪽인 자연휴양림(0.9km)으로 가거나 서쪽인 탑재(1.2km)를 거쳐 능가사(3.2km)로 하산하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인 깃대봉(제9봉)으로 향했다. 등산안내도가 잘못되어 산행이 끝난 줄로 착각하고 하산하기 일쑤다.

흙길과 잡목지대를 걷자 고령신씨 묘소를 지나 헬기장에서 또 다시 이정표를 만난다. 서쪽의 50m 지점엔 우물이 있다. 두번째 헬기장에서 많은 산행인들이 점심을 먹고 쓰레기를 줍는 손길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직진하면 제9봉 깃대봉이라 잘못 세워진 표지석이 전신주 옆에 버려져 있다. 이곳에서 8개의 암봉이 가장 멋있게 앵글에 잡혔다. 정상은 0.3km쯤 더 직진해야 한다.

▲ 팔영산 암봉과 다도해 풍경이 어울렸다.

고흥경찰서 팔영산초소와 무선기지국 건물 뒤편에 팔영산(609m)의 정상 삼각점과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남동쪽 영남면 소재지로 하산길은 3.0km로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등산로도 고흥사랑모임에서 잘 정비해 놓고 안내판을 세워서 등산객들에게 길잡이를 하고 있다. 다른 산과는 달리 정상을 철조망으로 가로막지 않고 등산로를 개방해 놓은 행정기관이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고흥군에서는 팔영산 등산로를 실측하여 이정표를 바로잡고 잘못 세워진 정상 표지석을 올바로 세웠으면 좋겠다.

휴양림으로 하산은 두번째 헬기장 아래로 되돌아나와 동쪽이다. 돌계단을 0.8km쯤 걸어 내려가면 산막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관리사무소까지 30분을 지루하도록 콘크리트 길을 걸어야 한다. 이곳에는 측백나무와 잎사귀가 빛나는 건강한 동백나무들이 군신처럼 늘어서 있고, 관리사무소 좌측 산비탈에는 유청신 정승 피난굴이 있다.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사랑회 회장

산행코스 1  능가사~제1~8봉~깃대봉~남릉~영남면 소재지(3시간40분 소요) 2  능가사~제1~8봉~깃대봉~팔영산 자연휴양림(4시간 소요) 3  능가사~제1~8봉~깃대봉~제8봉~탑재~능가사(3시간40분 소요) 4  강산리~제2~8봉~깃대봉~제8봉~탑재~능가사(3시간10분 소요) 교통 광주나 순천에서 고흥행 직행버스를 이용하고, 과역이나 고흥에서 능가사행이나 영남면 군내버스로 갈아탄다. 영남면에서 능가사까지 택시 이용 가능.  자가용 차량은 벌교에서 고흥 방면 15, 27번 국도로 진입, 과역을 통과해 2km를 가다가 855번 지방도를 만나면 좌회전해서 능가사 방면으로 진입.  숙식 평화식당(대표 정예순·061-835-2358)의 한정식이 맛깔스럽고 1인당 10,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고흥회타운(대표 박성호·061-835-2487)의 담백하고 싱싱한 회를 1인당 15,000원에 맛볼 수 있다. 팔영산 자연휴양림 : 산 동쪽 암벽의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이 휴양림은 숲속의 집과 야영장, 체육시설 등을 갖추었다(전화 061-833-8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