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산·행] “아빠 엄마 손잡고 철쭉꽃 보러가자!”

5월의 둘째 주말, 포천의 농군(農軍) 김홍경씨(46·크로니산악회) 가족이 철쭉꽃이 한창인 가평 서리산을 찾았다. 오늘 산행에는 부인 최진순씨(43)와 쌍둥이 지은, 지향(6) 자매가 함께 했다. 언니 지선(12)이가 학교 때문에 빠지긴 했지만, 이렇게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은정말 오랜만이었다.

“딱 1년 전쯤인 것 같아요. 지향이와 함께 춘천 오봉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법 험한 길이었는데, 투정부리지 않고 잘 걸었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오늘은 송우리에서 등산장비점(천보산장)을 운영 중인 쌍둥이 엄마 최진순씨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매장에서 살다시피 하던 매인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과 온 종일 산에서 지낼 수 있다니,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김홍경-최진순 부부는 1990년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게 된 전문산악인 부부. 당시 최씨는 한일합동대 소속이었고, 남편 김씨는 서울 크로니산악회팀으로 세계 최고봉을 등반하고 있었다. 이 때의 인연을 잘 가꿔 결혼에 성공한 보기 드문 케이스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맺어진 연분일 것이다.

▲ 만개한 철쭉꽃 옆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쌍둥이네.

산악인 부부지만 산을 함께 오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사회활동하며 시간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산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큰 맘 먹고 나서지 않는 한, 오늘 같은 가족산행은 꿈같은 일이었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에서 임도를 타고 서리산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키 큰 철쭉이 능선을 따라 터널을 이룬 철쭉동산이 오늘의 목적지. 여섯 살짜리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코스를 택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아이들 때문에 고전이었다. 쌍둥이지만 막내인 지향이가 특히 힘들어했다. 엄마에게 매달리고 아빠에게 안기며 힘들다고 야단이다. 조금 후에는 다리가 아프다며 아예 길에 주저앉았다. 엄마가 지향이를 달래가며 길을 재촉했다.

“혼자 있을 때는 잘 가던 녀석인데, 언니와 함께 있으면 어리광이 심해져요. 쌍둥이라 샘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작은 것 하나도 똑같이 나눠주지 않으면 난리가 나요.”

오히려 가냘픈 언니 지은이가 훨씬 뚝심이 있었다. 걸음도 빨라서 어른들 못지않게 날랜 속도로 산을 올랐다. 너무 앞서가는 탓에 아빠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가서 지켜봐야할 정도. 쌍둥이지만 성격도 행동도 다른 개성 강한 아이들이었다.

산행은 아이들 페이스에 맞춰라

▲ 만개한 야생화 군락을 감상하고 있는 쌍둥이네 가족.

숲속의 등산로를 따라 30분쯤 오르니 시야가 시원스럽게 트인 능선에 닿았다. 이 일대부터 서리산 정상부까지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만개했을 철쭉꽃이 추운 날씨에 반쯤 핀 상태였다. 철쭉꽃이 터널을 이루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할 모양이다.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화사한 봄빛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이들은 꽃을 보더니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더 올라가야한다는 말에 실망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막내 지향이는 건드리면 울음을 터트릴 태세다. 산행에 지친 쌍둥이를 위해 일단 쉬기로 했다. 과일과 간식을 먹으며 숨을 돌렸다.

아이들 컨디션을 보니, 아무래도 서리산 정상은 무리인 듯했다. 오늘 산행은 철쭉동산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제 내려간다니까, 축 쳐져 있던 아이들이 사슴처럼 뛰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아이들을 잡으려고 걸음이 빨라졌다. 별안간 벌어진 경주 덕분에 예상 밖으로 산행이 싱겁게 끝나버렸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긴장이 풀어졌는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에 힘이 빠져 있었다. 역시 아이들이 어리다보나 긴 산행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쌍둥이들은 차에 오르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산행은 끝났지만 아직 오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몽골문화촌과 꽃무지풀무지 식물원에 들러보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문화 체험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오며가며 문화체험의 기회도 만들자

▲ 가족들이 몽골의 토속문화를 즐기고 있다.

몽골문화촌은 축령산 휴양림에서 8km쯤 떨어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에 있다.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타르시가 협력해 2000년 4월15일 문을 연 시설로, 3,170평의 대지 위에 몽골의 전통집인 게르 10동과 승마장, 공연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몽골 전통노래와 춤, 악기 연주, 기예 등을 보여주는 민속예술공연이었다. 마침 단체 관광객이 있어 함께 공연을 보며 색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떠들썩하던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꽃무지풀무지 야생수목원은 순 우리 땅의 꽃인 야생화만 갖춰놓은 곳. 2만여 평 규모의 야생화 전문 식물원으로, 2003년 봄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한국의 야생화 1,2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아쉽게도 쌍둥이네가 이곳 식물원을 찾았을 때는 야생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봄꽃은 졌고 여름 꽃은 피지 않은 좀 애매한 시기였다. 그래도 식물원 구석에 핀 금낭화, 붓꽃 등을 실제로 본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은 보람은 있었다.

어른들이 식물원을 돌아보는 사이, 쌍둥이는 수생식물원에서 올챙이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차 속에서 졸던 그 아이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역시 아이들은 회복이 빠른 모양이다. 쌍둥이들의 즐거운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글 김기환 기자
사진 김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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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가이드
축령산~서리산 연결해 산행하기도

▲ 능선의 멋진 소나무 옆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김홍경씨 가족.

축령산과 서리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 경계에 솟아 있다. 산행은 자연휴양림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 제1주차장에서 직전의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산막을 거쳐 능선을 따르면 수리바위가 나온다. 계속해 능선을 따라 30여 분 더 올라가면 남이바위가 나오고 남이바위에서 칼날 같은 바위능선을 타면 축령산 정상이다.
축령산 정상에서 절고개와 골짜기의 잣나무숲을 지나 다시 자연휴양림 주차장쪽으로 내려오거나, 절고개에서 직진하여 서리산에 올랐다가 휴양림으로 내려올 수 있다.
철쭉동산이 있는 서리산으로 곧장 오르려면 산림휴양관 오른쪽의 목교를 건넌다. 계속해 임도를 따르다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제법 가파른 임도를 지나 왼쪽 정면에 서리산 방향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오르면 화채봉 삼거리에 닿는다.
이후 철쭉이 우거진 순탄한 능선길을 따르면 서리산 정상이다. 서리산에서 주능선을 타고 억새밭과 절고개를 거쳐 축령산으로 산행이 가능하다. 서리산~축령산 종주는 산행에만 4~5시간 가량 소요된다.

교통

서울~마석은 전철 1호선 청량리역과 전철 2호선 잠실역, 강변역에서 운행하는 마석행 일반버스 및 좌석버스 이용.
열차편은 청량리역에서 1일 8회(05:25~ 22:30) 운행하는 춘천행 통일호 경춘선 열차(성북역 정차) 이용, 마석역에서 하차.
마석에서 1일 10회(06:30~21:20) 운행하는 축령산 자연휴양림행 버스 이용, 종점에서 하차. 30분 소요.
자가용 차량을 이용할 경우 경춘국도 마치터널을 지나 마석으로 들어서기 전인 쉼터휴게소에서 왼쪽 가곡리로 들어가는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마석을 경유하는 것보다 빠르다. 쉼터휴게소에서 자연휴양림까지 약 10km 거리에 15분 안팎 소요. 외방2리 버스종점에서 마석행 버스는 1일 10회(07:00~21:50) 운행.

음식

비금리손두부  20년 전통의 손두부 전문식당. 대를 이어 손두부만 만들어 팔고 있는 곳으로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주 메뉴는 손두부(1접시 6,000원)와 두부전골(1인분 7,000원)이고, 감자부침과 도토리묵 등 토속 음식을 주로 한다. 몽골문화촌 주차장 건너편 다리 건너에 있다. 전화 031-592-6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