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산행] 문경 마운틴페스티벌 & 부봉

문경은 진짜 산이 많다. 이렇게 산이 다닥다닥, 갯바위에 따개비가 몰려 붙어 앉은 듯한 고장도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산이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명산이라 불러 어색치 않은 준봉의 숫자가 양손으로 꼽기에도 모자란다. 주흘산, 희양산, 조령산, 대야산 등 전국적으로 팬을 거느린 명산이 부지기수다.

▲ 예스런 성벽에 스크린을 걸고 서늘한 초원에 앉아 등반기록영화를 보는 호사는 문경산악영화제에서만 가능하다.(제 1회 문경 산악영화제 광경)

이런 문경에서 산악축제를 여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겠다. 이 축제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지자체가 개최하는 산악축제, 그러므로 등산꾼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8월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문경새재 일원에서 연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문경까지 조금 세게 밟는 사람은 동서울 매표소에서 1시간만에 간다고 하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도 부쩍 가까워졌다. 새재 제1관문 앞 잔디밭에서 야영하며 밤엔 산악영화도 보고, 낮엔 주변의 명산을 두루 올라보는 2박3일은 등산꾼들로선 매력 만점의 ‘산행 휴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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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마운틴페스티벌

옛 성벽에 스크린 걸고 산악영화 상영
산과 숲 관련 행사 수십 가지 열려

▲ 전국등산대회 개회식(2004년). 매년 50~60팀이 참가해 열띤 경기를 벌인다.

문경 산악축제가 아니라 영문으로 마운틴페스티벌(Mountain Festival)이라 한 것은 장차는 외국인들도 끌어들이겠다는 의욕 때문이라고 문경시 문화관광과 서원 과장은 말한다. 아무튼 행사는 거의 모두 산과 관련지은 것들이다. 19일부터 21일까지의 산악영화제를 비롯해 새재 맨발로 걷기 대회, 문경새재 전국등산대회, 주흘산 산행대회, 등산장비 전시회, 백두대간 1박2일 체험, 오토캠핑대회 등등 크고 작은 행사가 수십 가지 열린다.

우선은 첫날인 8월19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는 전야제가 가장 볼만할 것이다. 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요들송 무대가 펼쳐진 다음 유명 산악인의 산악강연과 산악영화가 상영된다. 문경 마운틴페스티벌에서 가장 무게가 주어지는 것이 산악영화제라 할 수 있다. 산악영화는 이 날부터 21일까지 3일간 매일 밤 여러 편이 상영되는데, 암갈색의 옛 새재 제1관문 성벽에 스크린을 걸고 관객은 그 앞 잔디밭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며 영화를 보는 멋스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평소 제1관문 앞 잔디밭은 출입금지다. 하지만 영화제 3일간에 한해 무료로 야영을 허용한다. 텐트촌 앞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바로 텐트에 들어 잘 수 있게 한 것으로, 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석우씨(사이더스영화사 감독)는 “잔디밭 텐트에서 머물며, 예스런 성벽에 비쳐진 영상을 본 사람은 아마 평생 그 아름다운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 감독은 “작년에는 스크린이 좀 신통찮았지만 올해는 달라이트 매트라 하여 좋은 것을 구입, 영상미가 한결 돋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산악영화 하면 대개 마운틴, 버티컬 리미트, 클리프 행어, 케이투 등 산악을 소재로 한 허구물을 상상한다. 하지만 밴프 산악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문경 산악영화제도 기록 영상물 축제다. 작년의 ‘한국 산악영화의 과거와 현재’에 이어 올해는 ‘함께 가는 산’을 주제로 선정했다.

▲ 마운틴페스티벌 때의 문경새재는 밤도 아름답다.

상영작은 7월27일 선정이 끝난다. 해외원정등반, 등반(암벽, 빙벽, 스포츠클라이밍, 워킹), 환경과 문화, 래디컬 영상(산악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의 4개 부문으로 나누어 공식 상영작을 선정한다. 격하고 짜릿한 래디컬 영상은 그간의 한국 영상문화 역사를 돌이켜볼 때 기대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하지만, 작년과 달리 올해는 부문별로 100만 원, 수상작 200만 원 상금을 걸고 경쟁방식을 도입했으니 산악인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 등반과 휴식이 진솔하게 그려진 작품들이 여럿 출품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상영 전에는 한국을 빛낸 유명 산악인들의 풋프린트(Foot Print)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올해 처음으로서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정승권 네 산악인이 동판에 영원한 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행사 이후 오후 6시부터 7시30분까지는 안치환, 윤도현, 동물원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진행되며, 7시30분부터 10시까지 밴프영화제 수상작과 개막작품이 상영된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이 금요일 밤 행사를 가보도록 한다.

산악영화제는 캐나다의 밴프 산악영화제가 특히 유명하다. 문경 산악영화제 집행진 세 사람은 이미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밴프 산악영화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왔으며, 여기서 주목을 받았던 김중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생’을 상영한다. 산악영화는 낮에도 볼 수 있다. 매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새재박물관과 문경 휴스호스텔 지하 소회의실에서 연속 상영한다.

산악영화제 관련 행사로 유명 산악인과의 등산, 화제의 산책 사인회와 저자 강연 등도 기획돼 있다. 유명 산악인과의 등산은 8,000m급 14개봉 완등자인 엄홍길씨와 더불어 주흘산이나 부봉을 오를 예정이다. 사인회는 최근 조난당해 동상으로 손발가락을 잃었으나 극적으로 회생한 산악인 박정헌씨의 저서 <끈> 사인회가 예정돼 있다.

김석우 집행위원장은 “영화 관람객이나 각종 이벤트 참가자들 대상으로 상상을 넘어선 푸짐한 경품 행사도 기획돼 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한밤중에 조곡천 계곡은 반딧불로 흡사 은하수 같답니다. 영화 끝나고 나면 이 반딧불 구경도 꼭 하고 가세요.”

새재 맨발걷기대회가 가장 인기

▲ 문경새재 도립공원 계곡가에 조성된 드라마 왕건 촬영장. 마운틴페스티벌때 자연스레 들러보게 되는 곳이다.

한 번이나 두 번 일시적으로 치르고 끝내는 일회성 행사 중에는 8월20일 토요일에 여는 새재 맨발로 걷기 대회가 올해도 가장 높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제1관문부터 제2관문까지 왕복 6km의 흙길을 맨발로 다녀오는 경기다.

비로 쓸고 또 쓸어낸 듯 깨끗한 길을 어떤 이는 끝까지 까딱없이 걸어내는가 하면 어떤 이는 10분을 채 걷지 않아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발바닥이 그렇게 아프다면 분명 장기 어딘가가 좋지 않다는 신호이니 건강 요주의!  중간에 짚신 신고 걷기, 제기차기, 퀴즈 맞추기 등이 곁들여진다.

▲ 사부작 사부작 맨발로 초곡천 계곡길을 걸어오르는 여성들. 마운틴 페스티벌 때는 맨발걷기대회도 열린다.

크고 작은 모래가 깔린 흙길을 걸으면 발바닥 전체에 미세한 지압효과가 가해져 건강에 매우 좋다. 때문에 산악축제 기간 중이 아니라도 늘 맨발로 걷는 이들이 뵈는 곳이 이곳 새재길이다. 문경시가 또한 제1관문~제2관문 사이 3km 구간을 맨발 지압로로 설정하고, 맨발 걷기가 끝난 뒤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까지 만들어 두었다.

문경새재 전국등산대회는 조별로 조령산을 오르는 정식 등산대회로, 등산꾼임을 자처하는 건각들이 올해도 50개팀 이상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반해 주흘산 산행대회는 꾼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등행대회다.

8월20, 21일 이틀간엔 불정 자연휴양림에서 산악자전거대회가, 21일엔 문경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딩대회가 열린다. 문경은 스케일이 큰 비행이 가능해 2002년 세계 대회를 유치한 적도 있다. 19일부터 3일간은 초중학생에게 로프매듭 엮기, 기초 독도법 등을 가르쳐주는 등산학교를 열며,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은 야외 테이블을 직접 만들어보는 통나무학교도 연다.

문경은 백두대간의 6분의 1인 120km를 점유하고 있는 만큼 체험행사로 백두대간 문경구간 동시 걷기(7구간으로 구분, 1구간당 45명으로 참가자 한정), 백두대간 문경구간 1박2일 체험 행사도 연다. 이화령을 출발해 제3관문에서 1박하고 제1관문으로 내려오는 행사로 100명 한정해 참가 신청을 받는다. 그외 별자리 관측체험, 전통 한지 재현 체험, 도토리묵 만들어보기 등의 체험행사가 열린다.

축제기간 내엔 전시회도 여러 가지 열린다. 등산장비, 야생화, 백두대간 고지도, 산악서적 및 잡지, 백두대간 고지도 등이 전시된다. 마성면 솔밭에서는 8월20, 21일 이틀간 오토캠핑대회도 연다. 또한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에서 축제기간 내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전문 숲해설사가 동행하는 숲해설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산과 숲에 관련된 온갖 행사가 열리는 문경 산악축제다.

*홈페이지 www.sanfestival.com
*문경시 문화관광과 054-550-6394.
&산악영화제 사무국 054-554-8848.

 

먹거리
깊은산속 화로구이

활성탄과 목초액을 먹여 키운 돼지고기 생삼겹살과 7가지 한약재를 사용한 갖은 양념, 참숯불로 승부를 건 지 1년만에 문경시 모범음식점에다 향토음식점 지정까지 받은 업소다. 야채도 직접 재배한 무농약 야채를 쓴다. 2005년 문경시 주최 향토음식 맛자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다. 모범음식점이 70개소인 데 반해 향토음식점은 7개 업소뿐이다.

1인분에 7,000원인 가격은 “삼겹살이 다른 부위에 비해 원가가 7~8배 비싼 것을 감안하면 결코 지나친 가격이 아니다”라고 주인 임종훈씨(47)는 말한다. 여기에 순수 국산 참숯을 쓰기에 훈제가 되며 한결 맛이 나아진다고 한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 마을인 문경읍 상초리 도로변에 있다(전화 054-571-7978).

교통
중부내륙고속국도로 가다가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나오면 이내 신설 4차선 3번 국도를 만난다. 이후 5km쯤 북상하다가 우측 도로로 빠져 2km쯤 올라가면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다.
서울→문경=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에서 30~40분 간격(06:20~20:00)으로 직행 또는 고속버스 운행. 2시간40분 소요.
문경→새재 도립공원(제1관문)=시외버스정류장(054-571-0343)에서 1일 16회(07:20~18:50) 운행. 5분 소요.

숙박
새재 도립공원 입구에 문경관광호텔(054-571-8001), 문경새재유스호스텔(571-5533), 초원민박(054-571-1760), 새재모텔(571-1919), 목련가든(572-1940) 등이 있다. 또한 가까운 문경읍내에 최신 시설의 여러 숙박업소가 있다. 나이스모텔 054-571-2121, 알리앙스모텔 571-2346, 해바라기모텔 571-3600.
문경산악구조대원이 운영하는 왕건식당은 각종 찌개류를 맛있게 하며 조식도 된다(054-571-8823).

문경의 명소
문경종합온천
한 번에 두 가지의 온천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고 하여 인기인 온천장이다. 지하 900m의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는 칼슘중탄산천, 지하 750m 화강암층에서는 알칼리성 유황천이 분출된다고 한다. 알레르기성 피부염, 병후 회복, 피부미용 등에 좋다고 한다. 입욕시간 06:00~20:00, 입욕료 어른 6,000원, 어린이(7세 미만) 5,000원. 전화 054-571-8001.

문경석탄박물관
문경은 과거 오랜 탄광지역이었다. 가은읍 왕릉리의 문경석탄박물관은 이러한 문경의 석탄 채굴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전국 유일의 실제 갱도를 체험할 수 있어 인기다. 실제 지하갱도 230m를 이용해 갱도전시장을 만들고, 갱내생활과 붕락현장을 재현해 두었다. 그외, 탄광에서 사용하던 장비와 광물 등을 780여 종 4,57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입장료 770원. 전화 054-550-6424).

진남교반
일제 때 경북팔경 중 제1의 명승으로 꼽혔다는 강안절벽 승경지다.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 '경북팔경지일(慶北八景之一)'이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문경새재 나들목 입구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남으로 7km쯤 달리면 나온다. 우측 강변을 따라 병풍 같은 검은 암벽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한편은 도로터널로 뻥 뚫려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풍경이다. 굽도는 강변의 모래사장과 노송이 우거진 진남숲 일대가 볼 만하다. 이곳에는 문경에서 민물매운탕 맛으론 최고라는 영남매운탕집이 있다. 또한 철로를 이용한 자전거 코스인 레일바이크도 옆에 개설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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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봉

밧줄 잡고 아슬아슬 넘는 6개 기암봉
부봉 아래까지 조곡천 계곡길도 매력 만점

부봉은 문경새재 도립공원 가운데에 드러낸 듯 만 듯 솟은, 1,000m도 미처 넘지 못한 작은 봉이다. 주흘산, 조령산, 포암산 등 당당히 봉 아닌 산으로 거명되는 준봉들로 주위가 둘러싸여 흡사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쩔쩔 매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보면 부봉이 잘 생겼기 때문이다. 숨은 듯 낮춘 듯 해도 워낙 그 용모가 준수하여, 주변의 1,000m를 훌쩍 넘는 준봉들 사이에서도 부봉의 자태는 돋보이는 것이다.

▲ 제 6봉 정상. 멀리 주흘산릉 위로 여름 특유의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북쪽의 마폐봉에서 보았던 부봉의 그 기묘한 실루엣이 몇 해 지나서도 눈에 선하다. 만약 누군가 실경 산수화로 부봉의 윤곽선을 그렸다면 상상과 과장이 지나치다고 타박 맞았을 것이다. 엄히 따져 말하면 부봉은 주흘산 북쪽에 매달린 곁가지 봉에 불과하지만, 급격히 치솟았다가 곤두박질 친 산릉으로 완전히 독립된 산행이 가능하기에 주흘산과 구분하여 부봉만을 따로 사랑하는 산꾼들이 많다.

한반도의 근간인 백두대간에서 보자면 마폐봉(927m)과 월항삼봉(856m) 사이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 상에 부봉이 솟구친 형국이다. 잡은 자리가 이러하여 부봉에서는 포암산, 대미산을 거쳐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를 조망해보는 즐거움도 있다. 극심한 건조기만 아니면 봄가을 산불예방기간 중에도 산행이 가능하다는 것도 흔치 않은 매력중 하나다.

가마 부(釜) 자를 쓴 부봉이란 이름은 물론 그 생김에서 연유했다. 부봉 동쪽 문경읍 상초리 사람들은 이 산봉을 가마솥이 아니라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지금도 시루봉이라 부른다.

부봉 밑까지 새재 관문길만으로도 만족스러워

▲ 초곡천 계곡의 용추. 장마를 맞아 불어난 물줄기가 세차다.

부봉에 가마솥이나 시루를 닮은 암봉은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여섯 개다. 이 6개 봉우리를 등산꾼들은 동쪽부터 시작해 각각 제1, 2, 3, 4, 5, 6봉으로 부른다. 해발 높이도 제1봉 921m, 제2봉 935m, 제6봉 919m 등으로 모두 비슷하다. 이 6개봉을 차례로 밟으며, 각봉의 정상에 설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 산악 풍광에 반한 꾼들이 평일에도 심심찮게 뵌다.

산행은 제1봉에서 제6봉 방향으로 하는 것이 정석처럼 굳어 있다. 안전로프도 대개는 이렇게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기에 편하고 안전하게끔 설치돼 있다. 이렇듯 제1봉부터 모두 밟아보려면 동화원휴게소(054-571-2554)에서 계곡을 따라 동문에 올라선 다음 서진해야 한다.

그런데, 입구 매표소에서부터 조령 제1, 2, 3관문이 차례로 늘어선 초곡천 계곡 상류부의 동화원까지 가는 길은 지도로 보기엔 무려 6km나 되는 지루한 비포장 길이다. 때문에 문경 산악구조대의 두 대원 김동욱(문경 에베레스트 등산장비점 대표), 임종훈씨(깊은산속 화로구이 대표)에게 은근히 ‘차 타고 가자’고 종용했으나, 그들은 야속하게도 못 들은 척했다.

그 긴 계곡길을 빗속에서도 우정 걷게 한 그들의 속내는 걷기 시작하며 곧 알 수 있었다. 이 계곡을 차를 타고 휙 지나치는 것은 한 마디로 결례다. 불그스레 홍조를 띤 암반과 크고 거무스름한 바윗덩이들이 듬성듬성 놓인 골짜기를 쑥색 청류가 감돌아 흐르며 절경을 이루었고, 골짜기 양쪽의 숲은 밑둥 근처의 잡목들을 쳐내어 저 깊은 곳까지 정갈한 분위기다. 문경 꾼들은 이 길을 걸어서 오르내리며 마음껏 즐겨보라는 뜻이었다.

길은 깔끔한 마사토 흙길로, 몇몇 사람은 맨발로 걸어 오르고 있다. 조곡천 계곡길은 마운틴페스티벌 때 맨발걷기대회가 열리는, 맨발 등산객들을 위해 조성하고 가꾸어온 ‘맨발 길’이기도 하다.

적잖은 장맛비에도 물빛은 걸러낸 것처럼 맑다. 장마 때라 이렇게 수량이 좋은 것인가 했는데, 주흘산, 조령산 사방으로 갈래 계곡이 많아서 언제나 수량이 넉넉하다고 한다. 간혹 우비 속의 어깻죽지가 서늘해질 만큼 굵어지는 빗발 속에서도 초곡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뜻밖으로 많다. 길이 안전하고 편하며, 우중에도 분위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 제 6봉 정상에 자리잡은 장송. 뿌리가 많이드러나 보호조치가 시급하다.

매표소 안으로 들면 장승촌에 이어 산악영화제의 주무대로 커다란 스크린이 걸릴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난다. 그 뒤로 왕건세트장, 수달이 노는 연못(풀어놓은 잉어들이 없어지곤 하여 사람들이 낚시해서 잡아가나 했는데, 확인해보니 수달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조령원터, 동동주며 파전을 파는 숲속 휴게소, 수억을 준다 해도 팔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검게 용틀임한 장송이 선 옛 정자 교귀정,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가 마지막을 맞는 장면을 촬영한 곳인 절경의 용추 암반 등으로 장식된 초곡천 계곡은 그러므로 차를 타고 지난다는 것이 넌센스다. 길가의 그늘 좋은 곳엔 정자각을 세워두었는데, 몇몇 중년 산꾼들은 비를 피해 그 안에 들어 간식 보따리를 펼쳤다.

3~4km 간격으로 세 개나 늘어선 관문은 이 초곡천을 통한 새재길이 과거엔 매우 중요한 요로였음을 말한다. 상인들도,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도, 그리고 조선을 넘보던 왜적들도 모두 도리 없이 이 초곡천을 거슬러 올라 새재 곧 조령을 넘어야 했다.

세 관문 중 제1, 2관문은 왜적을 향해 남향으로, 제3관문은 북쪽 오랑캐를 대비해 북향으로 세웠다. 임진란 때 일당백이 가능했던 이 천험의 요새를 버리고 충주로 가 배수진을 쳤다가 패하고만 신립 장군 얘기를 하며 문경 산꾼 김동욱씨는 새삼 안타까워한다.

가마솥 엎어놓은 것 같은 암봉 6개 연달아

과거 크고 작은 전투로 절박했던 제1, 2, 3관문 주변은 절경의 암반계곡이거나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멋진 적송군락지다. 계곡 양쪽으로는 조령산이나 주흘산정으로 이어진 여러 갈래길목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 비가 와도 여전한 등산객들. 여전히 아름다운 제2관문의 송림.

동화원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휴게소 천막 아래에서 배낭을 벗고 간식이며 물을 든 다음 다시 빗속으로 나섰다. 동화원 뒷길로 돌아들어 부봉 2.2km 팻말을 지나 이윽고 골짜기 안으로 접어들었다. 하늘이 흐린 데다 안개가 자우룩한 계곡 숲속은 어둑신하다. 물줄기를 두어 차례 건넌 뒤 길은 소로로 변하며 점차 가팔라져,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소나기를 맞아도 춥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동화원에서 40여 분만에 통바람이 넘나드는 산성 동문 위에 오르자 이내 다시 한기가 스민다. 허물어진 옛 산성벽과 문루의 기단석이 놓여 있다. 이 산성도 능선 동사면쪽으로 치우쳐 쌓은 것으로 보아 북쪽으로부터 쳐올라오는 오랑캐를 대비한 것 같다고 김동욱씨는 말한다.

능선을 15분쯤 오르자 ‘주흘산 3.5km, 제3관문 4.6km’ 안내판이 선 삼거리. 여기서 오른쪽의 급경사 길이 부봉 방향이다. 희뿌연 안개가 숲속 가득하여 몇 걸음만 떨어져 있어도 꿈속인 듯 몽롱하다. 한결 더 가팔라진 능선을 나무줄기를 잡으며 오르자 이윽고 육탈한 듯 드러나는 바위들-. 가파른 암벽면에 매듭을 지은 밧줄이 매어져 있다. 안개 속에서 한 사람씩 잡고 꼭대기에 올랐다. 거기가 제1봉 정상으로, 무덤이 있다.

팻말의 ‘동화원’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갔다. 제6봉까지 모두 밟고 곧장 내려가면 다시 동화원이기에 이런 다소 헷갈리는 팻말이 선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왼쪽 아래에서 문경 꾼들이 부른다. 거기 기막힌 동굴이 있다. 길게 차양을 내친 것 같은 천정을 이룬 굴로, 덮개바위라고도 부른다. 아무튼 10여 명은 편안히 들어앉아 비를 비하며 쉴 수 있는, 이 장마철엔 최고의 휴식처다. 거기서 버너 피우고 라면을 두어 개 끓여 김밥과 더불어 요기했다.

덮개바위 끝을 빠져나가 헬기장을 지나는데 안개가 걷히며 주변의 절경 산릉이 드러난다. 오른쪽으로 월악산~만수봉 능선, 왼쪽으로는 주흘산릉이 커다란 덩치로 일어선다. 제2봉은 부봉 6봉 중 최고봉이지만, 조망은 신통치 못하여 곧바로 제3봉으로 발길을 이었다. 곧 제6봉까지의 부봉 능선이 한눈에 바라뵌다.

바위 능선을 따라서는 길고 짧은 로프들이 연달아 매어져 있다. 어떤 곳은 균형을 잘 잡지 않으면 쉽게 오르지 못할 정도로 급경사이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짧은 간격을 두고 있는 제3, 4봉은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일부러 찾아온 암릉인데 우회할 이유가 없다. 비에 젖고 흙이 묻은 로프를 당기며 오른 댓가로는 분에 넘칠 정도의 절경이 거기서 기다린다.

제5봉 오름길은 부봉에서 가장 위태로운 구간으로, 좌우로 펼쳐지는 경치도 그만큼 좋다. 몇 번인가 반복하여 밧줄을 잡아당기고 바위턱도 잡으며 오른 제5봉 정상의 길고 평평한 암부 위로 숨길이 막힐 정도로 강한 안개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서둘러 제6봉 전의 안부로 내려섰다. ‘제2관문 2.5km, 동화원 2km’ 팻말이 선 이곳 네 갈래 길목에서 예정한 하산길은 왼쪽. 그러나 제6봉을 빠트릴 수 없어 급경사 철계단을 따라 제6봉 정상을 향했다. 계단이 놓이기 전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지만, 노약자는 어림도 없겠다 싶게 가파른 암벽이다.

마침 구름이 씻은 듯 걷히고 하늘마저 파랗게 드러나며 강한 여름 햇살이 내리비춘다. 매듭 지은 로프를 잡고 오르는 암릉 왼쪽 아래는 가마득한 절벽. 계곡 저편 흰 구름을 휘감고 선 조령산이 대기의 조화로 엄청난 크기의 고산 같은 풍모를 드러낸다. 산도 사람처럼 장식하기 나름인가.

제6봉은 정상에 멋진 낙락장송을 왕관인양 얹고 있다. 아름드리 밑둥에서 여러 가닥의 가지들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높은 기품의 수형을 이루었다. 다만 등산객들 발길로 뿌리가 드러나, 주위를 보호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고사할 것 같다. 꼭대기 암부에 올라서서 주위를 휘돌아보고는 안부로 되내려갔다(고도감이 상당하므로 노약자는 주의).

네 갈래 길목에서 남쪽 급경사 지능선으로 내려가며 드러나는 풍치도 이모저모 뜯어보며 즐길 만하다. 되돌아본 제6봉은 흡사 북한산의 노적봉 같고, 제4, 5봉쪽에서 흘러내린 긴 암릉들이 겹쳐진 풍광은 이 산을 찾은 보람으로 넉넉하다.

숲 짙은 계곡으로 내려선 다음엔 무덥기도 하여 우물거릴 것 없이 빠른 걸음으로 내리닫았다. 깊게 고랑이 팬 산죽밭 사잇길을 철벙거리며 지나자 곧 세찬 물줄기가 흐르는 조곡천 물가다. 김동욱, 임종훈 두 문경꾼은 가운데 물살이 가장 세찬 암반 위에 우뚝 서서는 지레 겁먹은 서울 길손들을 안심시킨다.

계곡 건너엔 아까 오름길엔 무심히 지나쳤던 ‘부봉 2.5km 1시간20분’ 팻말이 서 있다. 동화원에서 부봉만 돌아오는 데는 덮개바위에서 느긋이 쉰 시간까지 합해 5시간 남짓 걸렸다. 여기에 매표소까지 오가는 데 걸리는 3시간을 합하면 총 8시간쯤 잡아야 무리 없다.

 

글 안중국 차장 tksdkr@chosun.com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