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항에서 서남쪽 19.4km, 삼천포항에서 동남쪽 19.5km에 위치한 사량도(蛇梁島)는 한려수도의 뱃길 위에 떠 있는 환상의 섬으로, 역사의 흔적과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행정구역이 경남 통영시 사량면인 이 섬은 면소재지가 있는 윗섬을 중심으로 아랫섬, 수우도, 농가도, 죽도 등 9개의 유·무인도로 한 면(面)을 이룬다. 이전에는 박도(樸島), 또는 자비도(慈悲島)라 불렸다고도 전해지나 그 내력은 알 수 없다. 섬에는 뱀이 많이 서식하기도 하거니와 섬의 형태가 뱀을 닮았다고 해서, 또 옥녀의 설화와 관련해 사랑 ‘애(愛)’가 사량으로 변했다는 민간 어원이 전해지는 섬이다.
사량도는 섬의 중심에 동서로 뻗은 산줄기가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솟아 있고, 대항 마을에는 모래가 고운 아담한 해수욕장이 있어 한여름 피서를 겸한 산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지리산(397.8m)~불모산(달바위·399m)~가마봉(303m)~옥녀봉(261m)~고동산(216.7m)으로 연이어지는 산세는 육지의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수려한 경치는 물론이고 아기자기한 암봉으로 이뤄진 능선은 스릴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산행은 일반적으로 돈지에서 동쪽 방향으로 진행, 지리산과 불모산에 이어 험난한 암릉구간인 가마봉을 넘어 옥녀봉, 고동산을 거쳐 진촌으로 내려선다. 돈지에 비해 육지행 배편이 많은 진촌으로 하산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돈지포구 서쪽 끄트머리에서 시작되는 순환도로를 따르다보면 오른편 산릉으로 접어드는 등산로가 많지만, 금북개재 고개까지 걷는다. 한여름 햇볕에 따가움을 느끼지만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더위마저 잊게 한다. 왼편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우도는 기암절경으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해벽등반 대상지로 인근의 삼천포와 진주의 산악인들이 가끔 찾는 곳이다. 30여 분이면 닿는 고갯마루에서 오른편 산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로 들어선 지 15분여, 표지판(돈지 1.25km, 지리산 1.2km)이 있는 갈림길이다. 제법 시야가 트이면서 아랫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발아래로는 타원형을 이룬 해안선을 따라 돈지포구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마을이 아늑해 보인다.
성채 같은 암벽을 타고 20여 분 오르면 지리산 정상에 선다. 산정에는 표석과 함께 삼각점이 있고, 남해와 사천, 고성 일대와 해안선을 낀 망운산, 금오산, 와룡산, 향로산 등이 부옇게 다가오고, 정면으로 불모산이 삿갓을 엎어 놓은 것처럼 솟아 있다.
지리산이 보인다하여 지리망산
이 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바다 건너 육지의 지리산이 바라보인다 해서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불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지리산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단다. 어찌되었던 조망만큼은 다른 산에 비길 수가 없다. 하지만 섬 산이라 해무(海霧)가 잦은 관계로 시야가 좋은 날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지리산을 등지고 발걸음을 옮기면 잡목숲의 터널을 통과해 촛대바위를 지난다. 촛대바위는 돈지에서 올려다보면 촛농이 흘러내리는 형상이다. 비스듬한 암릉을 내려서면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이다(가마봉 2.3km, 옥녀봉 2.7km, 내지 0.6km, 성자암 0.3km, 옥동 1.3km). 시간이나 체력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은 성자암을 거쳐 옥동 마을로 하산하기도 하지만, 옥동에서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성자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이 섬의 유일한 사찰로 산행 중 만날 수 있는 식수공급지이기도 하다.
갈림길 표지판을 지나 숲길로 내려섰다가 불모산을 향해 오르게 된다. 칼날 같은 암릉을 지나기에는 심장을 다소 진정시켜야 한다. 급사면의 깎아지른 암봉을 오르면 ‘달바위 400m’란 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봉우리가 높아 달맞이를 했다고 전해지는 이 봉우리는 불모산이다. 사량도 최고봉으로 나무가 없어 고려시대부터 불모산(不毛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산정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지나온 능선은 물론 가마봉, 연지봉, 탄금대,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은 설악의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을 연상케 한다. 왼편 대항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고, 오른편 바닷가의 옥동 마을이 한가로워 보인다. 건너편 아랫섬도 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섬과 섬 사이의 바닷길을 동강(桐江)이라 한다. 칠현금을 만드는 재료인 오동나무란 뜻으로 악기에 비유해 유래된 바다가 아닌 강. 윗섬과 아랫섬을 가르는 동강(桐江)은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여서 뱀 ‘사(蛇)’ 다리 ‘량(梁)’을 붙여 사량도가 됐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급경사의 절벽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우회로와 위험로로 갈라진다. 그대로 직진해 바윗길을 넘어서면 우거진 송림 사이의 안부에 갈림길 표지판이 서있다(지리산 2.1km, 옥동 1.2km, 대항 1km, 가마봉 0.8km, 옥녀봉 1.2km). 사실 불모산부터는 곳곳에 위험구간이 많은 관계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통영시에서 대대적으로 등산로를 정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주능선은 위험이 따르므로 체력이나 컨디션을 고려,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이어지는 암릉길을 지나면 갑자기 막아선 바위벽에 로프만 걸려 있다. 하늘길로 오르는 기분으로 올라보면 가마처럼 생겼다는 가마봉인데, 천신이 옥녀를 위해 내려보낸 가마라는 얘기가 전한다. 사량도의 등산로 곳곳에는 친절하게도 안내표시판이 많아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가마봉 정상에서의 하산로에는 절벽 낭떠러지에 기댄 철계단을 내려서게 된다. 그러나 너무 수직으로 설치돼 있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계속되는 바윗길로 나아가니 이번에는 로프가 매달린 바위를 내려서는 길이다. 로프를 붙들고 하강하여 몸을 돌리면 정면으로 수직의 바위벽이 버티고 있다. 형상이 거문고를 닮았다 하여 탄금대라 부르는 암봉이다. 옥녀의 애달픈 사정이 서러워 그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선녀가 거문고를 타던 곳으로, 이 산을 밟으면 쿵쿵 울리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나무 줄사다리가 하산을 기다린다. 제법 긴장되는 코스다.
다시 암릉의 왼편 사면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쇠파이프 난간이 설치돼 있으나 발 아래로 끝없는 천길 단애의 수직 절벽에 소름이 돋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송림 사이로 흙길을 밟고 옥녀봉에 이르게 된다.
사량도 전설의 상징이 되어버린 옥녀봉. 그래서 ‘사량도 옥녀봉’은 통영8경의 하나가 되었던가? 욕정에 눈먼 홀아버지로 인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죽어간 옥녀에 얽힌 전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곳 섬사람들은 얘기를 꺼린다.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옥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지금도 사량도에서는 혼례 때 대례(신랑 신부 맞절)를 치르지 않는 풍습이 있다.
옥녀봉에서의 하산길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파른 경사에 절벽 아래의 철계단을 지나야 하는 까다로운 길이다. 20여 분을 내려서다가 ‘대항해수욕장↔면사무소’ 갈림길 표지판에서 왼편 숲속으로 돌면 진촌서 대항으로 넘나드는 도로에 선다. 도로에서 고동산까지는 30여 분이면 오를 수 있다.
소라고동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는 고동산은 탄금대에서 옥녀가 거문고를 켤 때, 고동산에서 거문고에 맞춰 고동을 불었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다. 이곳서 바라보는 옥녀봉~불모산 능선은 조물주가 만들어낸 걸작품으로 또 다른 영상으로 다가온다. 동강과 어우러진 금평항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건너편 아랫섬에 솟아 있는 칠현산 연봉들이 도열하듯 뻗어 있어, 지난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 15분이면 억새밭의 안부에 다다르고, 여기서 오른편 길을 따르면 채소밭을 지나 최영장군 사당 앞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난다. 최영장군 사당은 문화재자료 제32호다
글 사진 황계복
산행코스
○돈지~지리산~불모산~가마봉~옥녀봉~고동산~금평항(6시간 소요)
○돈지~지리산~불모산~가마봉~옥녀봉~금평항(5시간 소요)
○옥동~성자암~불모산~가마봉~옥녀봉~금평항(3시간 30분 소요)
교통
사량도는 통영항 여객선터미널(055-642-6016)에서 여객선, 도산면 가오치(055-642-6016, 055-647-0147)에서 카페리, 삼천포항 여객선터미널(055-832-5033, 011-571-5033)에서 여객선, 고성 용암포 다리호 선착장(055-673-0529)에서 카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고성 용암포에서 다리호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고 볼 수 있다. 삼천포→다리호 선착장은 노선버스가 자주 없는 관계로 택시를 이용(8,000원)하는 것이 편하다. 금평항에서 돈지는 마을버스 이용(1,600원), 20분 소요.
배편은 동·하절기에 따라 운항시간의 변동이 있으므로 사전에 필히 확인해야 한다. 인원이 많을 경우에는 유람선을 대절할 수도 있다(삼천포유람선협회 055-835-0172~3).
전국 각지에서 운행하는 진주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진주 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 삼천포행 이용.
고성 용암포→사량도=1일 5회(07:30~17:30) 운항.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사량도=1일 1회(15:00) 운항
가오치→사량도=1일 5회(07:00~17:00) 운항.
삼천포항 여객선터미널→사량도=1일 2회(06:30, 14:30) 운항.
숙박
선착장이 있는 금평리 진촌은 사량면 소재지로 식당을 겸한 민박집, 횟집을 겸한 식당도 많다. 금평여관(055-642-6082), 동애여관(055-642-7302), 사량여관(055-642-6056)이 있고, 단체가 이용 가능한 유스호스텔(055-641-8247~8)도 있다. 해수욕장이 있는 대항에는 사량비치(055-643-6020)가 있다.
금평항 주변에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좌판이 펼쳐지고 횟집과 식당이 많으며 건어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