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메이커] '형사'로 6년만에 컴백 이명세 감독

▶하지원=이 감독님과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감독님은 아주 섬세하게 연기 지도를 하는 편이다. 극중 남순이 동료를 잃고 자객 슬픈눈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감독님은 사랑과 슬픔, 증오 등 여러 가지 복합된 감정을 요구했지만 배우로서 그런 감정 표현이 쉽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감독님이 '술 한잔 마시고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을 정도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감독님의 격려와 배려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몸동작으로 감정표현 힘들어

낡고 바랜 모자, 텁수룩한 콧수염, 그리고 맨발 패션…. 외모에서 풍겨지는 이명세 감독(48)의 이미지는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감독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소박해 보인다. 지난 6년의 공백을 깨고 이명세 감독이 신작 '형사'를 들고 돌아왔다. '개그맨'(88년)으로 감독 데뷔해 '나의 사랑 나의 신부'(90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후 '인정사정 볼 것 없다'(99년)로 스타일리스트다운 액션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막상 컴백작은 칼부림 요란한 액션 사극. 그를 만나 지난 6년과 새 영화에 대해 차근차근 대화를 나눴다. -피곤해 보인다. ▶새벽까지 영화의 사운드 믹싱 작업을 했다. 기자 시사회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일부 수정했다. 하지원이 노래를 부른 부분이 그림과 좀 튀는 듯해서 빼버렸다. 8일 개봉작부터는 아쉽지만 하지원이 노래 부르는 걸 들을 수 없다. -시사회 이후 빈약한 드라마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드라마(서사)가 아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그냥 영화다. 지금까지 영화가 드라마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드라마를 꼽자면 '형사'에서의 드라마는 이미지와 감정, 사운드다. 소리의 불협화음도 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드라마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이는 마치 한식집에서 한식을 푸짐하게 한상 차렸는데 손님들이 왜 중식은 없느냐고 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그래도 일반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서사를 중시하는 관객의 입장에선 생소할 수 있다. 다소 부담스럽다는 얘기도 들었다. 각기 다른 시각과 입장을 존중한다. 다만 드라마로만 영화가 평가돼 다양한 영화적 시도나 상상력이 제한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 점이 우려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영화 시사회 후엔 훌쩍 떠났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조화와 충돌이다. 예를 들면 남순(하지원)과 슬픈눈(강동원)의 검 대결에는 분노와 멜로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칼싸움이지만 사랑의 몸짓이고, 칼과 칼이 '쨍'하고 맞부딪히지만 그 사이로 발라드가 함께 흐른다. -마지막까지 믹싱을 한 걸 보면 사운드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은데. ▶그렇다. 남순과 슬픈눈의 별당채 신에서도 귀를 기울이면 사운드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알 수 있다. 문을 열 때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어 있고, 바람소리에는 휘파람이 섞여 있는 식이었다. -작업이 정말 힘들었겠다. ▶출연배우들 모두 죽음이었을 것이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고. 연기 지도할 때 "감독님 이상한 얘기만 하세요"란 말 많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내 잔소리를 참고 견뎌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6년 만의 컴백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정확히는 만 4년 만이다. 지난 2000년에 미국 뉴욕에 갔다. 토니 스콧 감독 등으로부터 CF 및 영화 연출 제의를 받고 떠난 것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모델 파업 등으로 본의 아니게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래서 미국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지냈다. 대학 다니면서 수업받고 온 기분이다. -영화가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됐다. 영화 제목 등에서 미국시장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는데. ▶사실이다. 꼭 목표한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다시 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듀얼리스트'(Duelist)는 영어 제목인데 처음부터 그냥 제목에 붙여 넣었다. 이러면 나중에 포스터 다시 만들 필요 없지 않느냐(웃음). -향후 계획은. ▶당분간은 인터뷰와 후반작업을 할 것 같다. 그리고 10일에는 영화제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한다. 이후의 일은 두고 볼 일이다.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리 생각해둔 것들은 몇 개정도 있다. 때와 장소 불문 낡은 모자 패션 '이명세식 스타일'

이명세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낡은 모자.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이명세 감독은 모자 패션을 고집한다. 어느 인터뷰 사진 컷을 봐도 이 감독 특유의 모자는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때문에 모자를 벗은 이 감독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그가 쓰고다니는 모자는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찌그러진 데다가 색이 적당히 바래서 일명 '이명세식 스타일'에 안성맞춤이다. 이 모자는 지난 2000년 미국 마이애미 필름 페스티벌에 갔다가 얻었다. 색감과 '포 더 러브 오브 필름'(For the Love of Film)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들어서 애용하고 있다. 모자 패션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냥 편해서다. 감독이 바깥 일을 많이 하는 직업이니 특성상 모자와 쉽게 친해질 수밖에 없다. 덧붙여 머리숱이 적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지만 모자가 하나쯤 걸쳐 있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좋다. "감독님 배려에 힘든 촬영 견뎌"

▶강동원=정말 열심히 연습한 게 많은데 영화에서도 그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아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대사가 거의 없어서 좋았지만 그만큼 몸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많았다. 그럴 땐 감독님과 상의하며 힌트를 얻었다. 평소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님으로부터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스포츠조선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