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리뷰] 영상에 철학을 담았다 '아이 히트 허커비'

굳이 LE(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더라도 워낙 소량만 출시되는 한국의 DVD는 사실상 ‘한정판’이다. 더구나 극장 개봉작도 아니라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아이 하트 허커비(I ♥ Huckabees)’도 곧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 같은 타이틀이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은 영상과 음향의 예술인 영화가 ‘철학’을 테마로 삼은 희귀한 예다.
환경 단체 ‘열린 우주’의 설립자인 주인공 앨버트(제이슨 슈워츠먼)는 숲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토지를 확보하려는 거대 유통회사 ‘허커비’의 젊은 중역 브래드(주드 로)가 단체의 주도권을 쥐면서 좌절한다. 앨버트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실존주의 탐정’ 재피(더스틴 호프먼) 부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재피는 “모든 사물들의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담요 이론’과 “보다 큰 우주를 만나기 위해 자아를 소외시켰던 일상의 개념들을 잊으라”는 ‘침낭 실험’으로 철학적인 치유를 시도하는데 앨버트는 점점 혼란스러워질 뿐.
전작 ‘쓰리 킹즈’에서 걸프전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데이비드 러셀 감독은 여기선 야비할 정도로 시니컬하게 21세기 미국인의 일상을 해부한다. 환경 문제와 대자본의 횡포를 다루는 듯하다가 실존주의와 정신분석학, 양자물리학으로 빠져들더니 기호학과 장자(莊子)사상, 상호연결망 문제까지 종횡무진으로 질주하고 마지막은 휴먼드라마의 공식을 따른다.
DVD의 품질은 상당히 우수하다. 채도가 높고 그라데이션이 안정된 화면은 ‘백화점’으로 상징되는 복잡하면서도 파편화된 일상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5.1채널은 주인공 아버지의 속물 근성을 상징하는 ‘서라운드 시스템’ 장면에서만 진가를 발휘해 묘한 느낌을 준다. 서플먼트에선 더스틴 호프먼이 진행하는 토크쇼를 놓치지 말 것.
‘원전’ 영화에 대한 ‘해설서’ 격인 이 쇼에선 종교학자와 천체물리학자가 등장해 “현상의 본질은 무한적 상대성” “의식은 물리의 일부”라는 식의 토론을 벌이는데 의외로 흥미롭다.
(폭스, 106분, 2.35대1 애너모픽, DD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