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당기는 영화 주로 즐긴다

‘웰컴 투 동막골’의 대대적 흥행으로 전국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영화가 모두 10편이 됐다. 국내 영화 시장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이 정도의 대형 히트작은 단순히 영화 내적인 원인만으로 분석할 수 없다. 평균적인 한국인들은 어떤 영화를 즐기는 것일까. 대형 히트작 10편을 미국과 일본의 역대 자국영화 흥행 베스트 10과 비교해본다. "우리가 남이가‥"
500만명을 동원한 10편 중 무려 5편이 남북 분단문제를 다뤘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을 정면으로 그렸고 ‘실미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는 분단체제가 낳은 비극을 주제로 삼았다.
한국전쟁과 남북 대립 상황이 대단히 영화적이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이 여전히 분단 체제를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비극으로 여기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큰 문제를 다룬 작품은 역대 흥행 순위 10위 안에 단 한 편도 들지 못했다.
감동은 실화에서 온다
‘친구’ ‘실미도’ ‘살인의 추억’ ‘말아톤’은 모두 실화를 극화한 작품이다.
남북 분단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들까지 포함하면 1위부터 8위까지가 모두 실화를 소재로 삼았거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넓게 잡아도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이 각각 2-3편 뿐이다. 한국인을 사로잡는 것은 휴먼 드라마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팬터지
한국 관객들은 장르 영화를 덜 좋아한다. 특히 SF를 위시한 팬터지 영화가 그렇다.
미국 베스트 10 중 팬터지 영화는 7편, 애니메이션을 합치면 무려 8편이다.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3편이나 포함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산업적인 이유도 있다. 팬터지는 대자본을 쏟아부을 수 있는 할리우드가 전력투구하는 장르이고,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비교우위를 점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많은 제작비를 들인 대작 팬터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종종 등장하는 상황에서 아직 500만명을 넘기는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관객 취향을 그대로 말해준다.
한국 사회에는 영화적 소재가 지천으로 널렸다. 또는 한국인들은 현실에서 눈돌릴 여유가 없다.
속편은 지겨워
미국 흥행작 베스트 텐 중 속편이 5편이다.
시리즈와 무관한 작품은 ‘타이타닉’ ‘E.T.’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속편은 1편이지만, 감독 이름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를 이루며 시리즈 역할을 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3편이 함께 들어 있다.
국내 최고 흥행작 10편 중 속편은 하나도 없다. ‘조폭 마누라’와 ‘가문의 영광’의 경우 나중에 속편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이 두 작품이 나올 당시엔 시리즈물이 아니었다. 시차를 두고 하나씩 이어지는 내용은 텔레비전 드라마로 충분하다.
국내 관객들은 한 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확인하고 싶어한다. 시리즈가 적은 것은 실화 소재 영화가 많기에 속편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뜨거운 것이 좋아
일본의 흥행 베스트 10위 안에는 1990년대 이전 영화가 3편이나 들어 있다. 미국도 재개봉 때 수입을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2편이 포함됐다.
반면 500만명을 넘긴 한국영화 10편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99년작(쉬리)이다. 한국 영화 시장의 변화와 활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현재 몇몇 한국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998년부터 촉발된 멀티플렉스의 건립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영화가 ‘쉬리’를 시작으로 산업적 측면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다.
흥행 베스트 텐 리스트에서 확인되듯,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일본과 미국의 영화 시장에 비해 충무로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한국 관객들은 점점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한국 영화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