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아스라한 리듬만 담아…"

강동원은 멋지다. 하지원은 친근하다. 그러나 ‘형사’를 만들어낸 3명의 이름을 굳이 꼽아보라면 정답은 “이명세와 이명세 그리고 이명세”가 될 것이다. 8일 개봉한 사극 액션 ‘형사’가 선사하는 독창적인 영상미와 리듬을 다른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불친절한 영화’라는 말도 적지 않다.
-스타일 측면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미니멀리즘이랄까. 스토리든 무엇이든 관객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임 자체였다.”
-기획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눈이 쏟아지던 밤 우연히 골목길에 들어섰다가 남녀가 춤추듯 싸우듯 애무하듯 대결하는 장면을 봤다고 쳐보자. 훗날 그때를 떠올리며 진짜 있었던 일일까 싶은 아스라한 느낌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형사’는 외국 관객들이 자막 없이 봐도 별 장애가 없을 듯 하다. 미학적 고려 외에도 이런 방식이 세계 시장 진출을 겨냥한 포석은 아닐까.
“예전엔 자장면이나 곰탕만 만들어도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나를 보나 한국영화 전체를 보나 세계로 나가야 한다. 홍콩-중국 무협 영화와 한 판 붙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와이어 같은 것 쓰지 않고 영화가 가진 호흡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야망도 있었다.”
-이야기가 약하다는 건 초점에서 벗어난 비판 같다. 그건 ‘형사’의 전제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인 ‘플롯’에 대해선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플롯은 기승전결 작법을 쓰지만 나는 기본 이야기를 가장 영화적으로 옮길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했다. 요즘 영화들은 드라마와 메시지 전달에만 매몰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관객을 지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빼어난 멜로디지만 도돌이표의 주술에 걸렸다고나 할까. 모든 장면이 클라이맥스 같아 정작 클라이맥스가 찾아왔을 때는 부록처럼 여겨진다.
“모든 상황엔 그 자체로 클라이맥스가 있다. 매순간 마지막 에너지까지 다 쏟으려 했다. ‘클라이맥스는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영화 전체를 천천히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결국 영화는 장터의 예술이 아닐까. 가장 대중적인 영화로 포장된 이 작품이 사실 가장 전위적일 수도 있는 상황이 부담스럽지 않나.
“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대중에게 친절하게 다가서려 노력했다. 다만 이전에 타협했던 부분을 좀더 적극적으로 밀고 갔을 뿐이다. 가장 영화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영화 속 안 포교는 “싸움은 딱 한 번뿐이여”라고 말한다. 돌아보니 이번 싸움은 어땠나.
“이기고 질 것은 없다고 본다. 나로선 최선을 다한 싸움이니까. 이번이야말로 대중과 제대로 된 대결을 벌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싸움의 규칙은 미리 알려주고 싶다. 그건 내가 칼을 갖고 나왔으니 대중도 칼을 갖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