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오브 플렌티> 독일인 감독이 그려낸 미국의 균열과 상처

폴(존 딜)은 9·11 이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로부터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미국인. 그는 각종 장비를 실은 차를 몰고 다니며 홀로 투철하게 아랍인을 감시한다. 반면 10년 만에 폴을 찾아온 조카 라나(미셸 윌리엄스)는 외국에서 자라 인종과 계급에 상관없는 박애정신을 갖고 있는 소녀다. 어느 날 폴이 감시하던 아랍인이 라나가 일하는 노숙자센터에서 살해되고, 폴이 그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 라나가 따라나선다.
‘랜드 오브 플렌티’가 보여 주는 것은 제목처럼 ‘풍요로운 나라’ 미국이 아니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는 9·11 이후 첨예화된 미국 내부의 대립, 그 깊은 균열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참극 당시 즉각적으로 터져나온 충격과 분노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는 그들 내면의 공포와 갈등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더욱 성숙하다.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벤더스의 시선에는 냉소나 비판이 아니라 이해와 애정이 묻어난다.
그러나 ‘외부인’이 미국의 환부를 섣불리 건드렸다는 평을 면하려면 영화의 구성과 드라마가 좀더 다각적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폴의 캐릭터는 상처받은 미국 국민을 대변하기엔 너무 극단적이고, 라나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그들이 캘리포니아 트로나에서 뉴욕까지 가는 여정을 통해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은 인간적이고 아름답지만, 미국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를 치유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