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오지의 산 - 매봉산

▲ 어리 마을이 내려다뵈는 매봉산 정상 능선을 태백의 여성 산꾼들이 가고 있다.

태백의 매봉산 하면 백두대간 상의 고냉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매봉산(1,303.1m)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에 반해 태백시 삼수동 원동리와 삼척시 하장면 판문리, 어리 경계에 위치한 또다른 매봉산(1,123m)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도 산명이 표기돼 있지 않은 한편 아직까지 산악인들의 발길이 전무한 상태의 전인미답의 산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산이 남아 있었을까 싶다.

첩첩산골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산과 봉, 봉, 하늘에 떠가는 구름뿐이다. 십리에 한 집, 오리에 한 집이다. 그나마 대처로 떠나버린 주인 잃은 집들, 눈을 씻고 봐도 논배미 한줌 보이지 않는 두메산골이다. 수수, 녹두, 기장, 콩, 조, 팥, 밀, 감자, 보리, 호밀, 메밀, 대마, 고추, 옥수수, 그리고 약초(천궁, 당귀, 황기) 등을 심어 자급자족하던 산비탈 밭을 이제는 중장비로 갈아엎어 투기로 여름 배추를 재배해 옛날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통의 불편함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매봉산 일대의 실정이다.

▲ 매봉산행은 태백시와 삼척시 경계판 맞은편의 낙석방지용 푸른 색 그물이 없는 절개지를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봉산 동쪽 배재는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삼척 마읍리 중촌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 고려 유신들이 삼척궁터를 향해 절을 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해발 약 1,015m쯤 되는 배재 말랑에 ‘삼척시 하장면, 태백시 삼수동’ 경계판이 서 있다. 이곳이 매봉산 들머리다.

차 1대를 날머리인 판문리에 미리 가져다두고 김장래(태백시청), 백금석(대한생명), 권영희(태백여성산악회 회장), 안순란씨(태백여성산악회)와 더불어 시 경계판 맞은편의 낙석방지용 푸른 색 그물이 없는 절개지를 오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딸기나무 숲이다. 새콤달콤한 딸기의 유혹에 초장부터 산행이 늦어진다. 입술이 벌겋게 물이 들고서야 허리를 편다.

길도 없는 절개지를 올라 신갈나무가 빼곡한 주능선에 닿으니 가르마 같은 희미한 길이 숲에 묻혀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요즘 산삼이 잘 보일 때니 눈여겨 잘 봐!”

▲ 무진장으로 많은 산딸기를 폭식하고 있는 취재팀.

산삼 이야기를 나누며 어둠침침한 시 경계지역을 따라 고도를 높여 나간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알싸한 더덕향이 진동하고 어린 천남성 잎이 산삼 흉내를 내고 있다. 잡목이 앞을 막으면 돌아가기도 하며 주능선을 놓치지 않고 40여 분만에 매봉산 정상에 다다랐다. 신갈나무 아래 느릅나무, 미역줄나무, 오리방풀, 단풍취, 말나리들이 잔뜩 서식하고 있다.

정상 북서쪽은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 사이로 아직도 벽면이 너와로 된 집이 남아 있는 어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지난 달 오지산행 취재를 갔던 다랫봉(1,171.4m) 산릉들이 선명하다. 신갈나무에 직접 못을 박아 철조망을 쳤다. 철조망이 나무에 살을 파고 들어간 것을 보고 김장래씨는 가슴 아파하다가, “말뚝을 따로 박든지 하면 안 되나” 하며 흥분까지 한다. 안순란씨가 직접 농사지은 토마토, 오이, 사과 등을 차려놓고 오늘 무사산행을 기원했다. 아침을 굶었는지 권영희씨는 게눈 감추듯 한다.

서쪽 능선 입구에 태백여성산악회 표식기를 하나 달아놓고 철조망을 따라 하산한다. 숲이 빼곡하여 걷기 힘들다. 길도 없다.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니 벌목 후 조림한 지역이다.

가시에 찔리면서도 입은 즐거워

▲ 짙은 숲속에 멧돼지 배설물이 보이기도 하는 매봉산 능선길.

잠시 후 철조망이 능선을 가로지른다. 철조망을 다시 넘는다. 송장풀, 병조희풀, 참취, 도라지모싯대들이 꽃을 피워 사람의 키만큼 자랐다. 능선 양켠으로 조망이 좋다. 왼쪽은 강원랜드에서 백운산(1,426m) 북사면을 허물고 만든 스키슬로프가 흉물스럽고, 가깝게는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부터 신가평까지 이어진 765kv의 철탑도 거슬린다. 오른편으로는 어리골 깊은 사타구니에 띄엄띄엄 앉은 집들이 평화롭다.

키를 넘는 딸기 덩굴이 가시를 세우고 길을 막는다. 산딸기나무와 곰딸기가 지천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모두들 난리법석이다. “앗! 따거워!”를 연발하면서도 입은 즐겁다. 진행하는 방향이 모두 딸기이니 따먹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부르다. 그늘이 없으니 태양은 더욱 강렬하다. 땀까지 흐른 상처투성이의 팔뚝은 따갑고 아리고 쓰리다. 일각이면 빠져 나올 가시덤불에서 여삼추가 지나갔다.

덤불 밖으로 나오자 여기는 냄새가 진동하는 멧돼지 화장실이다. 검정볼기쉬파리, 파리, 검정파리들이 사람의 출현에 놀라 윙윙 시위를 한다. 방금 배설한 것 같다. 3~cm의 굵기이고 대여섯 군데의 무더기에 과식했는지 설사까지 했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인 가족 화장실인가 봐!

▲ 양맥골의 농로를 따라 구불구불 30분쯤 내려가면 산행 종점인 판문리 3반 성황당에 다다른다.

1089m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듬성듬성 바위들이 나타나 지금까지 산행에 비하면 신선놀음이다. 1089m봉에는 난청지역에 사용했던 TV 안테나가 있다. 잠시 내려가자 넓은 구릉지대다. 어느 쪽으로 산줄기가 흐르는지 보이지 않는다. 지형도를 읽으니 주능선은 왼쪽이다. 오른쪽이 주능선처럼 보이나 어리 마을로 이어지는 지능선이다. 여기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고즈넉한 숲에서 도시락을 풀었다. 밥맛이 없다. 산딸기 곰딸기를 포식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계속 서쪽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간다. 갑자기 오미자 덩굴이 앞을 막아선다. 김장래씨가 앞장을 서서 길을 튼다. 어렵사리 터널을 벗어나자 갑자기 돼지 특유의 냄새가 진동한다. 사방이 멧돼지 배설물이다. 부근에는 잠자리까지 있다. 아까 보았던 것은 가족모임이고, 이번 것은 반장, 이장, 면장까지 다 모인 대집단의 것 같다. “멧돼지다” 하고는 모두들 쌩 하니 지나가 버린다. 멧돼지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씩씩거리며 숲속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촬영도 포기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 약맥골 배추밭. 배추밭가에는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긴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지만, 고라니란 놈이 그물망을 넘어 한창 자라고 있는 배추 속고갱이만 여기저기 뜯어 먹고 다녔다.

숲 때문에 보행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다. 더 이상 주능선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고 1030m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지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한다. 경사도가 아주 심한 밀림지대다. 길이라고는 아예 없는데 짐승들이 다닌 길목에 올무까지 있다. 모자가 벗겨지고, 나뭇가지는 배낭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게다가 안경까지 놓고 가란다. 옷은 실밥을 잡아당겨 코가 다 빠져 버렸다. 키가 껑충한 백금석씨는 산행초보인데도 어렵고 힘든 산행을 즐겁게 소화해낸다.

 평탄한 지형에 이르자 오래된 묵묘다. 여기서도 숲을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더 이상 능선을 따르는 고집을 버리고 왼쪽 양맥골 배추밭으로 내려선다. 배추밭가에는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긴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도 고라니란 놈이 그물망을 넘어 한창 자라고 있는 배추 속고갱이만 여기저기 뜯어 먹고 다녔다. 이렇게 장난을 쳐놓은 것 같은 배추는 자라지도 못하고 상품가치도 없다.

 

▲ 강원도 첩첩산릉이 바라뵈는 매봉산 능선. 벌목 후 얼마 안 된 곳이라 조망이 좋다.

 이곳 사람들은 고라니를 '꾹지‘라 부른다. 꾹지 한 마리가 하룻밤에 5톤 트럭 배추 한 차분을 먹어치운다. 먹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 5톤 트럭의 배추 한 차는 약 3,000포기다. 봄부터 비닐하우스 모종해 품삯 내어 여름내 땀 흘려 가꾼,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배추들이다. 여러 마리가 달려든다면 하룻밤새 망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농민들은 분통 터질 일이다. 꾹지 잡으면 쇠고랑 차니까.

밀, 보리농사가 잘 되는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은 양맥골의 농로를 따라 구불구불 30분쯤에 돌로 지은 판문리3반 성황당이다. 여기서 산행을 마감했다.

산행 길잡이

산행거리는 짧으나 숲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섯밭재에서 주능선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1030m봉에서 남쪽 능선은 권하고 싶지 않다. 1030m봉 지난 안부에서 덕방골(덕뺑이골)로 하산하는 게 좋겠다. 양맥골로 하산하고 싶으면 섯밭재에서 하는 것이 좋겠으나 산행이 너무 짧을 것 같다. 3시간30분에서 4시간이면 될 것을 취재팀은 7시간 걸렸다.

교통

대중교통편이 불편하므로 자가용 차량을 가져간다. 행정구역은 삼척이지만 생활권은 태백이다. 태백 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판문리3반 버스종점까지 하루 2회(13:20, 17:30) 운행. 판문리3반에서 태백행은 07:20, 14:10에 있다. 버스는 저녁에 판문리3반 김윤식씨(033-552-0516)집에서 자고 다음날 태백으로 출발한다.

하장 터미널 전화 033-552-0552, 정선 시외버스터미널 전화 033-563-9265.

숙박

매봉산 주변에는 숙식할 만한 곳이 없다. 태백읍내엔 동경장여관(011-896-4497)을 비롯해 숙식할 만한 곳이 많다. 태백고원 자연휴양림(033-550-2849.582-7238)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