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진 대 최철한] "너를 딛고 가련다"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바둑 인생에서 결정적 ‘승부처’를 맞게 마련이다. 최철한(20)의 경우 2003년 말 천원전이 그랬다. 결승 5번기를 3대1로 뒤집고 처음 우승,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이듬해 국수와 기성까지 손에 넣으며 벼락 출세(?)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도 결승 무대를 넘나들더니 올해 중환배 정복으로 세계 챔프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천원전 결승 상대는 ‘송아지’ 라이벌 원성진(20)이었다. 원성진은 그 무렵 농심배서 3연승을 거두는 등 또 다른 ‘송아지’ 박영훈과 함께 연일 ‘상한가’를 치던 중이었다. 의기소침해 있던 최철한은 천원전 5번기 첫 판서 패했다. 그것으로 원성진의 대 최철한 통산 전적은 6승 1패. 바둑계는 원성진의 첫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최철한이 혼신의 힘으로 반격, 내리 3연승해 천원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이후 둘의 ‘신분’은 역전됐다. 초조해진 원성진이 중요 고비마다 좌절을 씹는 동안 최철한의 승승장구는 병역 특례 혜택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철한이 지난해 최고단(九단)에 오른 반면 원성진의 단위는 아직 六단이다. 국내 랭킹도 2위와 7위로 벌어졌다.
둘 간의 재회는 절묘하달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더니 최근 마침내 성사됐다. 제1기 원익배 십단전 토너먼트다. 원성진이 이정우를 제압(9일·한국기원), 대기 중이던 최철한과 16강전서 만나게 된 것. 10월로 예정돼 있으니 천원전 이후 무려 22개월 만이다. 최철한에게 원성진이 ‘은인’이 아니듯, 원성진도 최철한을 ‘원수’보듯 하지 않는다. 링 밖에서의 둘은 여전히 가까운 친구다. 하지만 어찌 둘 모두에게 감회가 없으랴. 기다려지는 한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