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 숲' 숲은 절절하나 나무는 갈팡질팡

제목만 보고 풋풋하고 이국적인 풍광을 연상했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종려나무숲’이 보여 주는 것은 싱그러운 잎이 아니라 질긴 뿌리이며, 너무나 한국적인 황톳빛 한(恨)의 정서다. 포스터 속 김민종과 김유미의 멜로 코드도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김민종은 과거로의 문을 열고 닫을 뿐,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조은숙과 김유미가 보여 주는 ‘여인의 삶’이다.
엘리트 변호사 인서(김민종)가 맞선으로 만난 커리어우먼 성주(이아현)에게 2년 전 거제도에서 만난 화연(김유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려나무가 가득한 화연의 집을 찾아온 인서에게 화연의 할머니 봉애(조은숙)는 또다른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난봉꾼에게 후처로 시집와 마음고생하던 봉애의 과거와, 전처 소생의 딸 정순(김유미·1인2역)의 과거가 이어져 펼쳐진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의 유상욱 감독이 어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가슴에서 우러난 이야기인 만큼 절절한 데가 있다. 그러나 성주에서 봉애까지 너무 많은 화자가 등장하는 2겹의 액자구조는 감정을 한 곳에 몰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뒤늦게 태도를 바꾼 인서의 깜짝고백도 감동을 주기 보다는 낯설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