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주부퀴즈왕] 곗돈 날린 한석규 "상금이 필요해"

방송인인 아내 수희(신은경)를 뒷바라지 하며 6년째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는 진만(한석규)은 계모임이 잘못 되어 돈을 날린다. 아내 몰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만은 3주 우승에 3000만원 상금을 내건 주부 대상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다. 진만이 방송에서 1승을 거두며 예기치 않게 유명해지자 이를 부끄러워하는 수희와 갈등이 쌓인다. ‘미스터 주부 퀴즈왕’은 국내에서 이미 14만명에 이른다는 ‘주부’(主夫)에 눈돌린 착상이 신선하다. 이야기의 흥미로운 전개를 위해 방송 퀴즈쇼와 엮기로 한 판단도 괜찮다. 메시지도 뚜렷하고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공정한 편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매력이 없다. ‘미스터 주부 퀴즈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재의 관성으로만 굴러간다는 점이다. 제목으로 요약된 기본 아이디어 주위에서만 빙빙 도는 이 영화는 스토리의 기본 얼개부터 개별 에피소드까지 상상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외길만 걷는다. 남녀 역할을 뒤바꿔보는 데서 수원(水源)을 찾는 유머는 처음 한두번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집에 있는 남편이 “발 수건 좀 따로 쓰라니까”라고 바가지를 긁고, 일 나가는 아내가 “집에서까지 스트레스 받게 하지마”라고 응수하는 식으로 이후 수도 없이 반복되며 또다른 관성의 늪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무던하다 못해 무디게까지 여겨지는 ‘주부 퀴즈왕’을 보다보면 의문이 절로 든다. 상업영화라고 해서 이야기는 관객 모두가 예견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중영화에서 감동이란 그저 일련의 제작 공정 끝에 기계적으로 조립 가능한 정서인 걸까.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한석규가 첫 주연 영화(닥터 봉)에서 해낸 것은 코믹 연기였다. 전성기 시절 이름만으로도 작품에 후광을 드리웠던 그는 이후 긴 휴지기를 지나 선택한 ‘이중간첩’ ‘그때 그 사람들’의 부담스런 무게를 던져버리고 소품 코미디에 다시 도전했다. ‘미스터 주부퀴즈왕’에서 그의 연기는, ‘닥터 봉’에서 그랬듯, 무척 능숙하다. 그런데 그 많은 너스레와 능청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숱한 전작들로 익혀온 한석규는 결코 ‘주부’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의 과장된 성대 모사에서, 망가지는 것을 불사하는 여장(女裝) 연기까지, 온 몸을 던진 그의 코미디는 종종 관객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배우에겐 경력 역시 연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배우가 현재 선택한 역할도 그의 이력이 뿜어내는 강력한 자장의 영향권내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석규는 쉽지 않은 승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