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호남의 산 - 천왕봉

▲ 암봉을 우회해 천왕봉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취재팀.

구례는 풍수지리설에 선녀가 지리산에서 목욕하고 승천하는 도중에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낙지의 땅이다. 또 구례의 4대 혈, 지리산 4대 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당을 간직하고 있어 풍수가들은 모두 한두 번쯤은 다녀갔을 것이다. 이 구례땅에는 지리산 천왕봉과 이름이 똑같은 작은 천왕봉(695m)이 숨어 있다.

백두대간 만복대에서 서쪽으로 지맥 하나가 가지를 쳐서 밤재~견두산~천마산~형제봉을 지나 천왕봉을 솟구쳤다. 이 봉은 사람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오늘도 말없이 구례를 굽어보며 서 있다. 물줄기는 모두 섬진강에 몸을 섞는다. 이 봉의 남쪽 구례읍 논곡리에 옛적에 토속종교의 하나였던 천왕을 모시는 종교가 일제 말기까지 있었는데, 이 산의 봉우리가 영험해서 그들이 천왕봉으로 불렀다는 설이 전한다.

이 산 서쪽 마을에는 신라시대(1,600년 전)의 황룡사라는 사찰과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는데, 현재의 화엄사로 사찰이 이전하면서 3층석탑은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3층석탑이 있어 마을이 탑선이고, 황룡사가 있던 본 고장이라 해서 본황이라 한다.

산행들머리인 가정리의 곡성청소년야영장은 굽이치는 섬진강물이 장관을 이루며, 옛날 기차여행, 레일자전거타기 등 체험관광과 볼거리가 풍성해서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빈다. 구례군청 환경산림과 오영호 계장은 관내 산 정상에 친환경적으로 도안한 표지석 25개를 세우고, 자기 고장 명산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용틀임하는 지리산 산줄기 바라보여

▲ 천왕봉 정상에 선 일행. 구례군에서 세운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다. 조망이 훌륭해서 북으로 형제봉과 천마산이 한눈에 잡히고, 지리산 산줄기가 용틀임한다.

이번 산행은 호남, 낙남, 금남정맥을 완주하고 전국의 명산을 섭렵하며 노익장을 자랑하는 전주 재회산우회 양석권 회장과 함께 코스를 답사해 의미가 있었다. 양 회장(76)은 87년 모악산 산행을 계기로 현재 857회의 산행기록을 갖고 있다. 천왕봉 답사도 혼자서 세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매사에 빈틈이 없는 이다. 박영근 대장(75)은 1,000개 산행목표 중 827개를 달성했고, 중국 황산. 백두산, 금강산도 산행했다. 차기옥씨는 전북 도계탐사 대장으로 활동했으며, 최병기씨는 환경정화활동에 적극적이고 독도에도 일가견이 있다. 홍일점인 장혜경씨는 16년의 산행경력을 가졌으며, 전경환, 김용만, 김종환, 김효열, 육종순, 김시원씨와 전북산사랑회 서종기씨가 함께 했다.

곡성청소년수련장(가정 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면 삼거리를 거쳐 본황 마을에 닿는다. 수령 310년의 노거수가 마을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다가 우리를 반겨 맞는다. 15인승 승합차로 마을 위 쇠줄로 막아놓은 복숭아밭 옆 콘크리트 길까지 달렸다. 대형버스는 가정 마을에 주차하고 1km쯤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동쪽 농로를 따라 걷다가 계곡 좌측 숲으로 들어서자 계류를 건너게 된다. 꽃향기와 솔 향이 그윽한 소나무숲을 지나 낙엽 쌓인 돌길에 뱀 잡는 그물이 쳐진 것이 보인다. 옛적에 사람들이 많이 다녔을 길이건만, 숲이 우거져 등산로를 찾아 리본을 붙이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땀에 흠뻑 젖어 주능선에 사거리에 오르니 1시간30분이 걸렸다.

▲ 형제봉 정상. 역시 조망이 좋아서 지리산 산줄기와 광의면 들녘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향하니 순천 나도산악회 리본이 처음으로 우리를 반겨 맞는다. 첫번째 암봉을 거쳐 희미한 바윗길을 우회해서 두번째 암봉을 돌아 20분쯤 지나 천왕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구례군이 세운 표지석과 국립건설연구소의 대삼각점이 있다. 조망이 훌륭해서 북으로 형제봉과 천마산이 한눈에 잡히고, 지리산 산줄기가 용틀임한다.

정상에서 동쪽의 누룩실재로 가면 용방면 상용, 혹은 요강바위산과 백령사를 거쳐 구례읍 백련리로 하산하게 된다. 용방면 상용에 이르는 계곡길이 산행의 백미다. 암봉을 지나 북쪽 능선을 걷다가 쉼터에서 민생고를 해결하며 느긋하게 담소를 나눴다. 다시 북릉으로 다리품을 팔면 소나무숲 능선길이 아주 좋다.

사람 흔적이 없는 고개를 지나면 철쭉군락과 소나무숲이 계속된다.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형제봉이 보이고 바위지대를 지났다. 45분쯤이면 고울넘이재 사거리에 닿는다. 서쪽은 탑선, 동쪽은 중방리 하산로가 있는데, 동쪽 길이 더욱 뚜렷했다. 

15분쯤 걸으면 낮은 봉우리를 거쳐 바위가 있는 두번째 봉우리인 형제봉에 닿는다. 이곳에도 구례군이 표지석을 설치해 놓아 산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조망이 좋아서 동북으로 만복대와 지리산 산줄기들이 너울너울 춤 추고, 북쪽엔 두계치, 천마산, 견두산이 한눈에 잡히고, 동쪽엔 광의면 들녘이 다가온다. 

▲ 탑선 마을의 보물 제509호 삼층석탑.

바윗길을 좌측으로 내려가면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북쪽)의 양탄자 같은 소나무 낙엽을 밟는 실크로드를 가노라면 또 다시 갈림길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두계치에 닿는다. 형제봉에서 30분 거리다.

옛 화엄사가 있었던 고을 본황

두계치엔 동쪽의 산도리 기동 마을에서 비포장 임도가 올라와 있고, 거리도 1.5km로서 가깝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산행이 너무 짧아서 서쪽 소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나침반을 보니 등산로가 자꾸만 남쪽으로 향한다. 묘소가 많고 옛적에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길이건만 최근 들어 발길이 뜸해졌는지 중간지점부터 나뭇가지와 풀이 자라서 길이 희미해졌다.

남쪽 계곡으로 길을 뚫고자 했으나 가시덤불이다. 희미한 옛길을 따라 산마루를 세 개나 넘으니 무덤 5기가 있는 곳부터 길이 좋아졌다(두계치에서 50분 소요). 동쪽으로 형제봉과 남동쪽 천왕봉이 눈에 잡혔다.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니 잡초가 무성한 휴경지가 나오고, 건너편 외딴 농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동쪽의 계곡쪽으로 빠져나가자 등산로가 이어졌고, 양측에 전답이 있는 콘크리트 길을 걷게 됐다.

▲ 탑선 마을로 가는 길.

작은 폭포가 숨어 있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탑선 마을 느티나무 앞에 닿았다(두계치에서 1시간20분 소요). 이 마을은 계곡을 경계로 동쪽은 구례군 구례읍 논곡리 본황, 서쪽은 곡성군 고달면 두가리 탑선으로 나누어졌으나, 13가구 주민들은 행정구역만 다를 뿐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간다. 보물 제509호인 삼층석탑이 있어 탑선(塔仙) 마을, 본황은 화엄사의 옛 이름인 본황사가 있었던 고장이란 이름을 가졌다.

회관 앞 계곡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10분쯤 가면 밤나무 동산 기슭에 3층석탑과 안내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석탑 옆에 묘소들이 있었고, 목이 없어진 부처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문화유산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주민에게 물었더니. 땅 주인이 탑을 쓰러뜨리고 묘를 썼는데, 관계기관에서 복원하고 관리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석탑을 구경하고 내려오니 농가의 벌통에 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물어 나르느라 여념이 없고 맑은 계곡에는 산천어가 한가로이 유영한다. 탑선까지는 버스가 오지 못한다. 5분쯤 걸으면 모정을 지나 아침에 지나갔던 본황 마을 삼거리를 만난다. 승합차는 양쪽으로 모두 갈 수 있으나 대형 버스는 곡성청소년야영장(가정 마을)에 주차하고, 탑선은 15분, 본황은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먹을거리

나루터가든(대표 유점례?061-363~7940) : 청소년야영장 앞에 있는 이 식당은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의 자태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삼계탕(30,000~40,000원), 백숙(35,000원), 메기탕(대 40,000원, 소 30,000원)이다.

교통

곡성~청소년야영장 수시 운행, 15분 소요.

구례~청소년야영장 1일 4회 운행, 25분 소요.

드라이브코스 : 곡성~17번 국도~청소년야영장~가정~본향 및 탑선 / 구례~18번 국도~17번 국도~청소년야영장~가정~본향 및 탑선. 대형 버스는 청소년야영장에 주차.

곡성에서 압록까지 옛날기차 1인당 왕복 5,000원, 편도 3,000원에 즐길 수 있는데, 공휴일 4회, 평일 2회 운행한다. 레일자전거도 즐길 수 있다.  

산행안내

○제1코스 : 곡성청소년야영장(가정 마을)-1km-본황 마을-2km-능선 삼거리-1km-천왕봉-1km-능선 삼거리-2.5km-형제봉-1km-두계치-3.5km-탑선 마을-1.5km-본황 입구-청소년야영장. 총 13.5km, 6시간 소요. 볼거리는 많으나 등산로가 희미하다.

○제2코스 : 용방면 상룡 마을-임도-누룩실재-4.5km-천왕봉-누룩실재-요강바위산-시동(백련사)-백련리. 10.5km, 4시간 소요. 임도를 걷는 것이 흠이나 등산로가 좋은 편이다. 사륜구동차량은 누룩실재까지 갈 수도 있으나, 대형 버스는 용방면 상용 마을이나 구례읍 백련리에 주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