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히치하이커들, 수건들고 오라"

“수건 휘날리는 극장!” 지난 주말 낙원동의 필름포럼(구 허리우드 극장)이 온갖 수건으로 뒤덮였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미국에서는 크게 히트했지만, 한국에서는 단관 개봉한 SF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러 온 관객들이 자신들이 직접 가져온 수건으로 갖가지 퍼포먼스를 벌인 것. 영화 속 수건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에게 가장 쓸모있는 필수품. 달 여행할 때는 보온용 우주복, 뗏목을 타고 갈 때는 돛, 머리에 감으면 유독가스를 물리칠 수 있는 방독면이기도 하다.
16일 밤 300석 극장을 가득 채운 ‘열혈 신도’들은 형형색색의 수건을 휘두르며 열광했다. 돼지갈비 집 개업기념 수건과 십수년 된 지리산 관광기념 수건…. 이 행사는 극장측이 마련한 ‘히치하이커 되기 타월이벤트’지만, 수건은 관객들이 직접 집에서 가져온 것. 조롱과 풍자로 범벅이 된 B급 상상력의 SF ‘은하수…’가 ‘록키 호러 픽쳐쇼’ ‘스타워즈’ ‘헤드윅’ 등 관객참여 영화의 계보를 잇는 순간이었다.

수동적인 관람을 넘어 영화 속 행위까지 따라 하는 것은 관객의 충성도(혹은 혐오도)가 꼭지점까지 달했다는 방증. 관객참여 영화의 대표적 사례인 컬트 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1975)의 경우 쌀을 뿌리거나 물총을 쏘고 라이터를 켜면서 괴성을 지르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영화 도입부의 그 유명한 자막 “오래전 머나먼 은하계에…”이 스크린을 장식하면 관객도 일제히 소리를 질러 화답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애정 을 몸과 소리로 과시하는 것. ‘은하수…’의 수건 퍼포먼스 역시, 황당무계한 이 SF의 창의적 발상에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동의한 사례다. 영국식 농담과 코믹 SF라는 장르가 한국관객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예상 탓에 단 한 곳의 극장에서 개봉한 ‘은하수…’는, 이렇듯 ‘히치하이커 열혈 신도’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며 흥행하고 있다.
단관 개봉으로는 올해 기록인 관객 1만 명을 지난 추석에 돌파했고, 8월 26일 개봉 후 2~3주로 예정했던 상영 기간도 10월 초까지 전격 연장됐다. 필름포럼 박상백씨는 “주말 심야 시간대를 노려 다시 한 번 ‘수건 축제’를 기획할 테니, 히치하이커 신도님들은 꼭 기대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