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에는 유난히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싫다는 17세 이석(이태성)과 17세 조인영(정유미)을 30세 조인영(김정은)이 억지로 불러다 놓고 밥을 먹이는 한정식집 장면이나 이석과의 관계가 소문난 뒤 인영이 친구와 함께 있는 와인바 장면 등등.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술 마시는 장면은 모두 특징이 있다. 영화에 소품으로 나온 술들이 모두 진짜 술이라는 점이다.
워낙 '리얼한 느낌'을 강조하는 정지우 감독의 특징 덕분에, 마시는 척만 하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알콜 기운으로 연기를 했다. 술 마시는 장면에서 17세 이석의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취기였던 거다. 물론 이태성은 실제로는 미성년자가 아니므로 쓸 수 있었던 방법이다.
리얼한 건 좋지만 이런 방법에는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가장 큰 문제는 NG. 처음에는 괜찮지만 술을 조금씩 마시다 보면 '느낌'이 너무 진하게 와서 나중에는 배우들이 취해버리게 된다. 감정에 취하면서 술에도 취해 버리는거다.
이 영화도 이런 부작용은 피할 수 없었다. 본래 김정은은 자주 술을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술자리에서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강주파. 하지만 인영이 이석의 고모 뻘 되는 학원 강사 동료(친구)와 와인바에서 서로의 깊은 얘기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스태프들은 갑자기 없어진 김정은을 찾느라 잠시 소동을 피웠다.
알고 보니 김정은은 바의 한쪽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어 있었던 것. 촬영이 길어지며 와인 두 병을 싹 비운데다, 세상이 환영해주지 않는 사랑을 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너무 깊이 이입되다 보니 절로 취해 버렸던 거다. 아무튼 이 장면에서 촉촉한 기운을 보였던 김정은의 눈매는 이렇게 만들어진 거였다. (끝)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