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면 후회하지! 주목해야 할 작품 '7+7'

올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 수는 모두 307편. 아무리 빡빡하게 일정을 짜도 하루에 네 편밖에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대체 어떤 작품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일까. 조선일보 영화팀이 올 부산영화제 상영작 중 아시아와 비아시아 영화로 나눠 7편씩 추천작들을 골랐다. 쓰리 타임즈(제작국-대만·부문-개막작) 세개의 시간대에 아로새긴 세가지 사랑의 삽화. 1911년과 1966년, 그리고 2005년을 무대로 삼은 옴니버스식 구성이지만 남녀 주인공은 세 편 모두 장첸과 서기이다. 거장 허우샤오시엔의 이 신작은 그가 영화언어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시적인 운율을 지닌 묘사에서 무성영화 형식까지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세 편 모두 소름이 돋을만큼 아름답다. 서사를 밀쳐둔 채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얼려내는 세가지 사랑의 영롱한 화석. 시티즌 독(태국·아시아 영화의 창) 태국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이 영화는 올 부산에서 가장 신선한 작품 중 하나다. 방콕에 온 시골뜨기 포드가 백지 책을 읽어내려 애쓰는 빌딩 청소부 진을 사랑하게 된다. 온갖 종류의 노래와 화려한 인공 색채 속에 들어앉은 인물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쳐다보며 저마다 판타지를 늘어놓는다. 당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랑을 그리는 개성 넘치는 멜러, 혹은 당신이 오래 전 일기장에 써놓고 잊고 지냈던 꿈. 버드나무(이란·아시아 영화의 창) 전작 ‘낙원의 색깔’에서 눈먼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가 ‘버드나무’에선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대학교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눈먼 사람이 시력을 되찾으면 행복만 기다리는 걸까. ‘낙원의 색깔’이 내내 고통스럽지만 결국 희망을 말한다면, ‘버드나무’는 꿈에 부풀어 시작하는 삶 역시 지뢰 가득한 미로를 헤매는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국내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천국의 아이들’을 기억한다면, 그의 부산 귀환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봄베이(인도·아시아걸작선) 떠들썩한 춤과 노래로 전형적 인도 상업영화처럼 시작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드러낸 다. 힌두교도 남자와 이슬람교도 여자의 결혼이 양 진영의 폭력적 충돌 속에서 장대한 비극을 맞는다. 흥겨운 군무에서 애절한 멜러까지, 서정적 스케치에서 대하극(大河劇)적인 클라이맥스까지, 인도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마니 라트남의 대표작.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몽골 독일·아시아 영화의 창) 소녀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누렁개의 동굴’에서 기어 나온 점박이 개가 실제로 갓난 아기를 구한다는 내용. 관계대명사가 여러 번 포함된 현대 영화의 복문에 지친 관객이라면, 단순 명료한 1형식 영화의 투박함에 위로 받을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과 유목민 이동 가옥인 게르 등 몽골의 풍속 등 시원한 비주얼은 덤이다. 여성 감독 비암바수렌 다바아의 작품. 로프트(일본·아시아 영화의 창) 구로사와 기요시는 90년대 일본 평단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은 감독.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난 분야는 ‘큐어’나 ‘회로’를 위시한 공포 영화들이다. 최면(큐어) 분신(도플갱어) 종말(회로)에 이어 ‘로프트’에선 미라를 모티브로 삼았다. 천년 넘은 세월 동안 진흙 속에서 잠자던 미라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음은 단 한 번도 없다. 공포 영화라지만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진 말 것. 그의 호러가 말하는 것은 타인은 지옥이라는 것, 그리고 세계는 불가해하다는 것이니까.
임신(중국·뉴커런츠 10년 그리고 현재) 제1회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받았던 중국 감독 장밍의 부산 복귀작. 그 자체로 부산영화제 10년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임신과 낙태라는 자극적 소재를 다루면서 생명의 본질적 의미를 내내 되새김질한다. 네 명의 남녀가 시계바퀴처럼 맞물리며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연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