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나오던 극장에서 출발… 아시아 간판 영화제로

제1회 부산영화제가 열린 1996년 9월. 독일 영화인 에리카 그레고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극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쥐에게 발을 물린 것이다. 이후 한동안 부산영화제 관객들은 고양이 울음소리 를 들으며 영화를 봐야 했다. 문제의 고양이는 영화제 측에서 쥐 잡으려고 풀어놓은 것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10년의 성장기는 고스란히 국내 영화제의 역사다. 지금은 아시아 최고의 영화잔치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부산영화제지만, 96년 출범 당시만 해도 영화제 집행부는 ‘영화제’가 뭔지조차 모르는 이들을 붙들고 홍보를 해야 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안 만나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아 스폰서를 구하러 다녔지만 숱하게 거절당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상영관 숙소 교통 등의 제반 시설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KTX는 고사하고 지하철조차 제대로 노선을 갖추지 못했던 ‘교통지옥’ 시절. 부산 시민들은 남포동과 해운대를 40분 안에 오가기 위해 퀵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타고 달리는 김동호 위원장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시 상영작은 27개국 170편. 특정 영화를 세계 최초로 상영할 때 쓰는 말인 ‘월드 프리미어’는 고사하고 ‘국내 프리미어’가 자랑거리였다. 일부 극장에선 2시간 내내 낡은 영사기가 ‘털털’ 대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무장한 18만4071명의 관객이 그 해 영화제를 찾았고, 집행부는 해운대 야외상영관을 꽉 채운 개막식 관객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0주년인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73개국에서 보내 온 작품 307편이 소개된다. ‘월드 프리미어’만 61편, 자국 외 첫 공개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도 28편이다. 예산은 1회 때의 2배 이상인 54억원. 먼저 출범한 도쿄영화제와 홍콩 영화제를 압도하고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대접 받게 된 지 오래다. 예전엔 1만달러씩 지불하고 간곡히 초청했지만, 요즘은 무료로라도 신작을 들고 오겠다는 감독이 줄을 선다. 핸드프린팅, 마스터클래스 등 부대행사도 풍성해졌다. 상영관 지도도 바뀌었다. 1회 때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했던 남포동 부영극장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고 재작년부터 해운대 메가박스가 추가됐다. 올해는 프리머스 극장까지 더해져 31개 스크린에 30만석으로 늘었다. 1만달러였던 뉴커런츠 부문 상금은 올해부터 3만달러로 높아졌다. 10년째 변함 없이 ‘영화제 얼굴’ 노릇을 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관객으로 꽉 찬 개막식은 언제 봐도 감격스럽고, 그 때나 지금이나 돈 모으는 게 제일 힘들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