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기자의 시네마 레터] 행운, 그 불공평함에 대하여

행운은 단순한 확률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종 타고나는 삶의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웡카의 신비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뿐 아니지요. 달콤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행운조차 그렇습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프랑스인 셀린과 미국인 제시가 기차 여행 중 우연히 만나 낭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하루짜리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이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국어로 타고났든 교육으로 습득했든, 두 사람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21세기의 브라만(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고 계급)’이니까요.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소련을 무대로 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다닐로프는 자신이 너무나 사모하는 타냐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바실리에게 이런 절망의 말을 내뱉지요. “사랑을 받는 자와 못 받는 자는 평등을 이상으로 지향하는 소비에트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그리스 신화에서 종종 행운을 관장하는 신으로 떠받들어진 헤르메스는 장사와 도박, 격투와 도둑질을 다루는 신으로 일컬어지기도 했지요. 어쩌면 행운마저 돈으로 사거나 속여서 빼앗는 것, 완력으로 차지하거나 훔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건’을 타고나지 못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행운만큼 불공평한 것은 없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컬릿 공장’은 드문 행운을 맞이한 다섯 아이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영화입니다. 최고의 초콜릿을 만들어내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윌리 웡카가 신비의 베일에 싸인 공장을 오직 다섯명에게만 공개한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전세계 어린이들이 초콜릿 가게로 몰려듭니다. 초대장 역할을 하는 황금 티켓 다섯 장을 판매 중인 초콜릿 속에 감춰두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는 주인공 찰리를 포함해 이 영화 초반부에서 티켓을 차지하는 다섯 아이는 한결같이 억세게 운 좋은 경우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행운만으로 티켓을 찾아낸 사람은 찰리밖에 없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초콜릿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는 아이입니다. 버루카의 경우, 대부호인 아버지가 어린 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수많은 초콜릿을 사들여 고용인들에게 일일이 뜯어보게 합니다. 껌 오래 씹기 세계 챔피언인 바이올렛은 지나칠 정도의 승부 근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과시하기 위해 안달하는 마이크는 수많은 자료들을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물론 이 넷에게 어느 정도 행운이 따르긴 했지요. 하지만 그 행운은 상당 부분 이들이 지닌 소비능력과 금력, 승부욕과 지능의 부산물인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 가난해서 생일이 되어야 초콜릿 하나를 간신히 먹어볼 수 있는 찰리가 행운을 거머쥘 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처지였으니까요. 착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소년 찰리는 생일 선물로 받은 초콜릿과 할아버지 비상금으로 한 개 더 구입한 초콜릿 모두에서 티켓을 발견하지 못하지요. 그러다 거리에서 주운 지폐로 산 마지막 세 번째 초콜릿에서 마침내 행운을 발견합니다. 찰리는 너무나 운이 좋았지만, 오직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다가 끝내 좌절하고 말았을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