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레터]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1960년대에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 살고 있는 160명을 뽑아 매사추세츠주의 샤론에 사는 생면부지의 평범한 주식 중개인 이름을 알려줍니다. 그러곤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 중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면 그 중개인과 선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골라 그에게 편지를 쓰게 합니다. 이어 그 편지를 받은 두 번째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또 다른 인물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실험은 계속됐지요. 결과를 확인해보니 대부분 여섯 단계 내에서 ‘임무’가 완료됐습니다. 기껏 여섯 단계만 거치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거지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다양한 커플들의 삶을 종횡무진으로 엮어나갑니다. 서로에게 숨기고 지하철 행상과 김밥 장사를 하는 부부 창후(임창정)와 선애(서영희), 중년 나이에 수줍은 사랑을 하는 곽회장(주현)과 오여사(오미희), 전혀 다른 취향으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빠져드는 허유정(엄정화)과 나형사(황정민) 등 여러 커플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그런데 처음엔 서로 독립적으로 보였던 각각의 커플들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선애는 유정의 아이를 유괴하고, 나무젓가락을 팔러왔던 창후는 곽회장의 회사에 취직하며, 아침을 때우려는 나형사는 전철역에서 김밥을 파는 선애를 찾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능숙한 바느질 솜씨로 꽤 많은 인물의 삶 사이에 매듭을 만들어두지요. 그건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코트 깃 뒤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연의 사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의 사람을 함께 알고 있어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이른바 ‘작은 세상 이론’은 그게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아는 범위가 총 300명이라고 하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은 9만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4단계만 건너면 전 세계 인구수보다 많은 81억명으로 증가하게 되니, 정말 “세상 정말 좁다”는 말 그대로인 셈이지요. 미국 노트르담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조차 평균 19번만 클릭하면 하나의 웹 페이지에서 임의의 다른 페이지로 링크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고 하니, 사이버 세상 역시 생각만큼 넓은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실 세상은 좁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원래 좁습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식을 보여주는 ‘숏컷’ ‘매그놀리아’ 같은 영화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듯, 우리 모두는 어깨를 부딪혀가며 같은 길을 고통스럽게 걷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기껏 몇 단계만 거치면 누구라도 얼굴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이 좁아터진 세상입니다.
세상의 뼈대는 직선으로 구획진 철골이 아니라,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엉망으로 뒤엉킨 실타래지요. 관계의 촘촘한 그물은 진저리쳐지는 생의 부박함 때문에 홀로 틀어박히고 싶은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고 낚아챕니다. 철기 시대에 황금 인생을 바랄 수는 없는 것. 이 작은 세계에서 익명은 사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