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공주' 그녀의 싸늘한 유혹에 빠지다

의붓딸을 학대하는 30대 계모(유혜정)를 뾰족한 흉기로 도륙(屠戮)하고, 몸매 하나로 남자를 꼬시던 20대 여성(현영)에게는 피부관리실에서 코와 입에 석고를 붓는다.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다음 살인. 청담동 축복웨딩홀 사장(김용건)은 머리에 흰 면사포를 쓰고 발가벗겨진 채 사체로 발견된다. 처음부터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정순정(엄정화)은 ‘오로라 공주’ 스티커를 살인 현장에 붙여 놓고, 다섯 명을 잇달아 저 세상으로 보낸다.
방은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 공주’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흡인력이다.
신인이라는 꼬리표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듯, 방은진 감독은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종착역까지 직선으로 내쳐 달린다. 처음부터 범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니, 아직 초반부인 네 번째 살인부터는 아예 살인의 이유까지도 공개한다. ‘친절한 금자씨’나 ‘복수는 나의 것’처럼 죽은 아이를 위한 복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오로라 공주’의 관심은 스타일 보다는 드라마다. 관객 역시 숨가쁜 호흡으로 엄마 정순정의 심리를 쫓는다. 범인과 형사간의 머리 싸움이 스릴러 특유의 재미라면, ‘오로라 공주’에 그 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릴러가 아닌 드라마로서 ‘오로라 공주’가 가지는 이야기의 힘은 상당하다.
싸늘함과 혹독함으로 무장한 ‘낯선 엄정화’는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정순정의 남편이자 목사를 꿈꾸는 형사 역의 문성근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연기의 특장이 어디에 있는 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복수를 포기하고 목사를 꿈꾸지만, 결국은 그마저도 포기하는 소심한 인생.
하지만 빠른 호흡과 캐릭터에만 집착한 나머지, 생략된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에 회상 장면으로 다섯 명의 ‘만행’을 압축해 보여주지만, 그들의 만행이 과연 죽음에 이를 만큼 중(重)한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스타일이 아닌 드라마로 승부하는 상업 영화에서, 이 다섯 살인에 대한 지지여부는 흥행의 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