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저예산영화 '조제, 호랑이…' 1년만에 재개봉 왜?

291석의 좌석은 물론 무대 앞 계단까지 빈틈이 없다. 지난 토요일(29일) 오후 5시30분 서울 광화문의 씨네큐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개봉 1주년 기념 재개봉 및 관객과의 대화’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이누도 잇신(犬童一心) 감독과 주연 배우 이케와키 치즈루(池脇千鶴)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등장하자 탄성과 플래시 섬광이 함께 터진다. 주먹만한 캠코더를 들고 무대에 오른 이누도 감독은 “재개봉은 정작 일본에서도 꿈꾸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뒤 돌아가서 우리 ‘조제…’ 팀에게 자랑하겠다”고 들떠 있었다.
규모와 속도가 지배하는 한국 영화 전장(戰場)에서 ‘조제…’의 성과는 작지만 경이롭다. 정확히 1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2004년 10월 29일.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소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조제…’가 전국 다섯 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450개관 확보도 성에 안 차는 한국 영화의 최근 ‘와이드 개봉’을 생각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숫자. 신문이나 TV 광고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해를 넘겨 2월 말까지 롱런했고, 4만6000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블록버스터의 1000만 관객도 부럽지 않은 성공이었다. 이례적으로 개봉 중이던 1월에 출시된 DVD도 10월까지 6000장이나 팔려나갔다.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은 ‘조제…’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 개봉 기간 동안 ‘조제…’는 네티즌의 평점(評點) 1위를 놓치지 않았고, 관객 점유율도 1위를 기록했으며 서너 번 봤다는 관객들의 감상평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왔다. 이날 무대 앞 계단에 앉아있던 대학생 이윤정씨는 “세 번 보는 동안 매번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영화”라면서 “감독님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극장을 찾았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마력(魔力)이 이런 열광적인 팬덤(fandom)을 만들어낸 것일까. 다음날(30일), 스님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이누도 감독은 “자신의 연애 경험을 추억하면서 많이들 공감하는 것 같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애의 시작과 종말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는 “아무리 드라마틱한 장면도 객관적인 거리감을 확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찍었다”고 했다. ‘조제…’의 배우들은 관객보다 먼저 울지 않으며, 심지어 스크린에서는 웃고 있지만 객석은 훌쩍거린다. “아마도 내가 지극히 냉정한 사람이라 그런 모양”이라며 그가 까칠한 수염을 쓰다듬는다. 옆에 앉아있던 치즈루는 “원래 영화가 개봉하면 배우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조제…’만큼은 이상하게 지워지지가 않았다”면서 “사랑이 일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영화”라고 했다.

두 사람과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한국영화 평균 순제작비(2004년 28억)의 1/3에도 못 미치는 ‘조제…’의 순제작비(8500만엔·약 8억원), 20개로 시작해 160개관으로 확대 개봉하며 지난해 일본 인디영화 최고의 흥행작으로 올랐던 기억, ‘조제…’ 이후 쏟아져 들어온 연출제안으로 질렀던 행복한 비명(2년 동안 4편을 찍었고, 2007년까지 3편을 더 찍는다고 했다) 등등…. 다음 주에는 동경에서 ‘조제 파티’도 열 계획. 일정도 정확히 몰랐던 미국 시라큐스 영화제에서 ‘조제…’가 ‘베스트 아시아필름’을 수상했고, 상금이 송금되어 왔다는 것.
지난 한 해 한국 극장에 걸린 영화는 모두 268편. 한 주 평균 다섯 편의 새 영화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충무로에서 ‘조제…’의 재개봉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초청한 수입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우리에게는 영화만 좋으면 관객들도 분명히 알아준다는 믿음을 준 작품”이라면서 “비용을 생각하면 정신나간 짓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조제…’의 1주년을 기념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제…’의 재상영은 일주일(9일) 뒤까지로 예정돼있다. (02)2002-7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