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젊음의 힘

〈총보〉(1~204)=우리 모두 수사관이 돼서 종국 후의 장면을 ‘현장 검증’해 보자. 하변 흑은 참고도 1 이하의 수순으로 잡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백 6, 10의 조임이 들어 중앙 흑이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이래선 가뜩이나 부족한 살림에 흑은 더 이상 버틸 힘도, 명분도 없다. 계가를 한다면 백이 반면(盤面)으로도 우세하다.
초반부터 쌍방 기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박진감이 넘쳤던 한 판. 그러나 흑에게 103이란 결정적 수읽기 착오가 등장하면서 그대로 밀려버렸다. 53세가 22세를 이기기란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바둑은 외견상 두뇌 싸움이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도 부치고 두뇌 회전 능력도 크게 쇠퇴한다. 바둑도 스포츠의 한 지류라는 측의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
구리는 돌 가리기에서 홀, 짝을 맞히자 드물게도 백을 선택한 뒤 완승으로 이끌었다. 무언가 영감(靈感)이 작용했던 것일까. 그 예지력이 구리에게 첫 세계 제패 꿈과 자국 팬들의 비원(悲願)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신호탄이었을지, 앞으로의 진행을 지켜볼 일이다. (204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1시간 30분, 흑 2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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