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요리] 북어 해장국 & 호박전

산행을 하기 전 마을 골목길을 지날 때 바라보는 감나무는 정식코스의 전채(前菜) 역할을 한다. 나뭇잎이 다 지고 꼭대기에 남아 있는 주황색의 까치밥은 외로운 등산인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힘든 산행의 긴장감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어느덧 낙엽은 모두 지고 이제 첫눈 내리는 일만 남았는데, 스산한 가을 산은 나그네의 객창감을 배가시킨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단풍놀이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산에는 단풍도 인파도 아무도 없다. 비록 스산하고 을씨년스런 날씨겠지만 역시 연중 산행하기 가장 좋은 달은 11월이 아닌가 한다. 중순부터는 또 산불예방기간이 시작되겠지만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즐기는 호젓한 산행이야말로 등산을 취미로 선택한 사람들의 축복일 것이다.

달력에 그 흔한 빨간 글씨가 4개밖에 없어 야속한 마음이 들겠지만 일정을 조정하여 고즈넉한 가을 산에서 1박 이상의 산행을 즐긴다면 올 한 해 산에 다니지 못한 빚을 충분히 갚고 남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위한 북어국과 저녁 안주 위한 호박전

이번 달에는 만추 산행을 가슴으로 즐길 독자들을 위해 따뜻하고 맛난 음식 두 가지를 준비해 보았다. 북어국과 호박전은 비록 풍요로운 음식도 아니고 귀한 음식도 아니지만, 코끝 시린 날씨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소박하고 정겨운 요리가 될 것이다.

서리 덮여 싸늘한 만추의 아침을 녹이기 위해 북어국을 끓여보자. 먼저 코펠에 참기름을 두르고 북어채를 달달 볶는다. 참기름은 볶으면서 넣어도 되지만, 볶기 전에 북어채를 참기름에 무쳐 불에 올리는 것이 기름이 골고루 북어에 배게 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볶을 때는 중간 불에서 하되 일단 불에 올리면 한눈팔지 말고 젓가락으로 부지런히 뒤적여 주는 게 좋다. 자칫하면 타기 때문이다.

얼마 있으면 북어가 약간 검게 익는데, 이 때 물을 코펠에 반쯤 붓고 준비한 다시마 조각과 무를 넣고 끓여준다. 조리시간을 단축하려면 무를 얇게 써는 것이 좋겠지만, 혀로 요리를 감상하려면 약간 도톰하게 썰어야 한다. 무가 다 익을 때쯤 다진 마늘과 양파를 넣고, 양파가 어느 정도 익을 무렵 대파를 3cm 간격으로 썰어 넣는다. 역시 대파가 풀어지는 정도로 익으면 계란을 따로 풀어 간을 해 넣으면 된다.

비록 계란을 산에 가져가는 것이 번거롭겠지만 이 요리를 위해 하나쯤은 소중하게 가지고 가기 바란다. 계란을 풀 때는 많이 휘저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란이 다 익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불에서 내리면 요리는 완성이다.

시중에는 라면처럼 물만 붓고 끓여먹는 즉석 북어국이 많이 나와 있지만, 역시 직접 해 먹는 것에 비하면 맛이 많이 떨어진다. 북어채만 가지고 가서 즉석 북어국에 넣어 먹어도 좋다. 하지만 잘 익어 달달한 무의 풍요로운 맛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제대로 끓여야 한다. 

전날 밤에 술을 마셨든 아니든 쌀쌀한 아침에 즐기는 이것이야말로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 고소하고 입맛이 당기는지 모르겠다. 이것에 밥을 말아 약간 신 김치와 함께 한다면 든든한 몸으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중량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면 요리 중간에 두부를 듬성듬성 썰어 넣으면 그 고소한 맛을 배가시킬 수 있다.

북어국이 아침을 위한 요리라면 호박전은 저녁 어스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술자리를 위한 메뉴다. 산에서 어떻게 호박전을 만들어 먹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한다면 최고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산에서 호박전을 부칠 때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계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맛이야 계란을 사용하는 편이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요리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과감히 생략한다.

먼저 준비한 애호박을 얇게 썬 다음 이것을 약간의 소금물에 3분 정도 넣어 둔다. 그러면 호박 속이 더 노랗게 변해 더 먹음직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씩 꺼내어 부침가루를 묻힌다. 부침가루에 묻히기 전에 물기를 약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박에 옷을 다 입혔으면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호박을 지지면 되는데, 버터가 금방 타서 검게 변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자리를 뜨지 말고 지키고 있어야 한다.

뒤집을 때는 젓가락보다는 넓적한 수저가 좋다. 자칫하면 튀김옷이 벗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한쪽 면을 익히기 전에 붉은 고추를 채 썰어 호박 위에 얹은 다음 뒤집으면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다. 계란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은 주로 사찰음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튀김옷만 입혀 요리하더라도 특유의 달큼한 맛은 혀끝을 간질이기 충분하다.

호박은 각종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고, 특히 이뇨작용을 촉진시키는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산후 부기 제거에 애용되어 왔다. 비타민 A인 카로틴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고, 위 점막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 속이 아플 때도 효과가 좋다.

생약도감에서는 호박을 보중익기(補中益氣)라고 말한다. 또한 이소변, 신경통, 화상, 당뇨병, 야맹증, 각막건조증 등을 다스리는 식품이다. 특히 육류 등 각종 지방과 단백질에 길들어진 우리들에게 별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회사일로 전주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완주군 동상면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은 이미 알려진 대로 고종 황제가 즐겨 드시던 고종시(高宗枾)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감나무로 뒤덮인 이곳의 주황색 시골길을 차로 다니는 맛이 일품이었는데 최근에는 감이 너무 인기 있어 이미 다 따버린 상태였다. 이런 오지에까지 경제 논리가 침투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결혼하기 훨씬 전에 사귄 여인과 함께 갔던 길을 걷다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슴 벅찬 운장산과 가녀린 위봉폭포는 예전과 같이 그곳에 똑같이 있었지만, 주황색 감과 그것을 닮아 예뻤던 그녀는 시간의 터널로 사라져 버렸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수필에서처럼 좋았던 추억은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다시 찾지 않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곳을 다시 찾을 것 같다. 추억은 추억을 낳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드니 말이다.

만들어보세요
북어국

재료(465kcal·3인분)
북어채 100g(두 주먹 분량), 다시마 카드 크기로 3장, 무 1/3개, 양파 1개, 대파 1뿌리, 참기름 3큰술, 계란 1개, 다진 마늘 한 큰술, 소금, 후추 약간.

만들기
① 코펠에 참기름을 두르고 북어채를 달달 볶는다.
② 북어가 약간 검게 익으면 물과 다시마 조각, 무를 넣고 끓인다.
③ 무가 다 익을 때쯤 다진 마늘과 양파를 넣는다.
④ 파를 3cm 간격으로 썰어 넣는다. ⑤ 계란은 따로 풀어 간을 해 넣는다.
⑥ 계란이 다 익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불에서 내린다.

호박전

재료
(302kcal·3인분)
중간 크기 애호박 2개, 부침가루 다섯 큰술, 붉은 고추 약간, 버터 100g, 소금 약간.

만들기
①  호박을 3mm 간격으로 썬다.
②  썬 호박을 약간의 소금물에 담가 둔다.
③  하나씩 꺼내어 부침가루를 묻힌다.
④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호박을 지진다.
⑤  기호에 따라 붉은 고추를 채 썰어 호박 위에 얹는다.

[유용한 행동식] 대추차(300kcal·100g) 몇 년 전 설악산에서 늦가을 우중산행을 즐기다가 오세암에 들러 어느 스님께 무심코 합장하며 인사를 드렸더니 산에서 딴 대추를 가지고 만든 차를 내주셨다. 당시 마셨던 대추차의 향기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비 오는 11월에는 산행을 않더라도 대추차를 찾곤 한다.  대추차는 당분과 비타민A, B1, B2가 많이 들어 있어 예로부터 민간에서 보건차(保健茶)의 개념으로 애용되어 왔으며, 신경쇠약, 빈혈, 식욕부진, 무기력, 그밖에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 특히 단맛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진정효과가 뛰어나 긴장, 불안, 초조, 우울증 등에 효과가 있으며, 신경과민으로 인한 불면증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각종 보약의 보조약으로 이용하는데, 대추와 궁합이 잘 맞는 것으로는 인삼, 생강, 감초, 구기자, 시호, 당귀, 오수유 등이 있다. 이 차는 자신의 기호와 증상에 따라 마시는 것이 좋다. 약간 뜨겁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고, 잠자기 30~40분 전에 마시면 숙면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래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져 장수한다고 한다. 단지 칼로리가 높아 몸이 마른 사람은 많이 먹어도 해가 없으나 비대한 사람은 조금씩 먹어야한다. 간 기능회복에 좋아 강장제로 쓰고, 신체허약, 지사제(止瀉劑) 등으로도 사용한다. 성숙한 대추를 달여서 꿀과 함께 먹으면 해열 진통에 효과가 있다. 시중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대추차가 나와 있는데 편한 것으로 치면 분말로 된 것이 산에 가서 먹기 좋으나, 맛을 추구한다면 잼처럼 꿀과 함께 재운 병으로 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보통은 산에 가기 전에 미리 끓여 보온병에 담아 가는데, 산에서 먹는 이것은 다른 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별미다. 특히 비 오는 11월 만추의 산에서 이것을 즐긴다면 추위와 허기, 극도의 긴장감으로부터 안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