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토크'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이 여자, 써니(배종옥)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로스엔젤레스의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써니는 경비를 서는 연하의 미국인 앤디와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러나 마음은 결코 열지 않는다. 이 여자, 영신(박진희)이 어찌 지내왔는지도 알기 어렵다.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성(性)과 사랑에 대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영신에게도 역시 애인이 있다. 하지만 늘 똑같은 관계에 지쳐 있을 뿐이다. 그런 두 여자 앞에 지석(박희순)이 나타난다. 써니 집에 세들어 살게 된 그는 영신의 오래 전 연인이었다. ‘러브 토크’에서는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제거되어 있다. 이제껏 경험해온 과거의 아픔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익명의 공간 속을 부유하며 떠다니는 현재의 스산함을 해결할 순 없다고 말하는 듯한 이 영화는, 어차피 누군가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거듭 되뇐다. 지금 이 곳에서 흔들리는 그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는 게 그나마 가능한 최선의 이해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서걱거리는 미니멀리즘 화법으로 일관한 데뷔작 ‘여자, 정혜’와 달리, 이윤기 감독은 이 두번째 작품에서 좀더 멀리 나아간다. 전작에 비하면 좀더 대중적인 화법과 훨씬 더 매끄러운 스타일을 견지한 이 영화에서 감독은 닿을 듯 번번이 미끄러지는 인물들 사이의 공간을 유려한 스케치로 잡아낸다. 서구 도시를 무대로 삼는 한국 영화들은 서양인과 한국인이 함께 연기하는 장면에서 ‘컴플렉스’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저 저마다 외로운 섬일 뿐임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움도 지녔다. 중반까지 서두르지 않고 차곡차곡 마음의 풍경을 쌓아가던 영화는 그러나 후반 들어 써니의 폭력적인 남편을 등장시킴으로써 작품 전체에 급격한 굴곡을 만든다. 소주를 병째 들이키는 식으로 전형화된 남편 캐릭터가 빚어내는 관성적 클라이맥스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조성된 이 작품의 분위기를 염두에 둘 때 지나치게 우악스럽다. 두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낸 것에 비하면, 핏기 없이 그려진 지석은 ‘인물’이 아니라 ‘환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