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도 변하나 봐" 한국 남자들의 변명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올 부산영화제 최대 화제작이었다. 4개 상을 휩쓴 이 작품은 영화제 기간 내내 흥분한 관객들 입에 오르내렸다. 올 초 이 영화를 중앙대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윤종빈 감독 나이는 스물여섯이다.

승영(서장원)을 신병으로 받아들인 병장 태정(하정우)은 그가 동창인 것을 알고 보호해주려 애쓴다. 계급으로만 내리누르려는 군 조직의 폭력을 이해할 수 없는 승영은 자신이 고참이 되면 분위기를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밑에 들어온 지훈(윤종빈)을 결심대로 잘 보살펴주던 승영은 점차 그의 태도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팔짱 끼고 응시하면, 사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촬영이나 편집은 밋밋하고, 이렇다 할 미학적 시도나 실험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학생 영화로 극적인 성공담을 만들어낸 작품치곤 패기와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나 대사 활용법이 탁월하다. 군복무를 이제 막 마친 예민하고 성실한 창작자가 자신의 경험을 문제의식에 담아 외화(外化)할 때 구현되는 뛰어난 디테일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군 생활 속 전형화된 인물과 상황이 빚어내는 특수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다양한 유머를 구사해 관객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이 대부분인데도 연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큰 매력. 감독 자신이 직접 지훈 역을 맡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봄날은 간다’가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우애와 신념 역시 변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변화된 권력의 양상은 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요구하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의 양이 모든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이 영화 속 공간은 여성 관객에겐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 기이한 세상이고, 군생활을 마친 남성 관객에게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리얼리티를 갖춘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가 단지 ‘군대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군복무 시절을 통해 집단주의와 위계질서의 폭력적 구조를 내면화하는 한국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은 자’라는 표현에 더 가까울 영화 속 짙은 자책감과 죄의식은 어쩌면 ‘한국 남자’의 원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