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관객 울리는 ‘킹콩’이에요"

1933년판 오리지널을 시작으로, 인기 덕분에 같은 해 제작된 속편 ‘킹콩의 아들’(Son of Kong), 제시카 랭이 주연한 ‘킹콩’(1976), 그리고 ‘킹콩은 살아있다’(1986)까지 공식적으로는 4편의 ‘킹콩’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콩(Kong)이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작품까지 합치면 열 편이 훌쩍 넘는다. 피터 잭슨의 ‘킹콩’은 1933년 오리지널의 리메이크. 에너지가 넘치는 잭 블랙이 야심만만한 영화 감독 칼 던햄 역을 맡았고, 킹콩과 애틋한 감정을 교환하는 앤은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다. 원작이 아닌 리메이크는 숙명적으로 맥 풀리기 마련이지만, 피터 잭슨(Peter Jackson·44)이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음 달 16일 개봉 예정인 올해 할리우드 최대의 화제작 ‘킹콩(King Kong)’.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무려 17개의 아카데미 트로피와 30억 달러를 거머쥐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영화잡지 프리미어)로 꼽힌 영화감독을 단독으로 이메일 인터뷰했다.
‘킹콩’ 제작일기 등 관련자료와 함께 한 달 만에 보내온 답변에서 그는 “늦어져서 미안하지만, 난 본질적으로 지극히 수줍음이 많은 인간”이라면서 “내가 지금 가장 바라는 건, 갑자기 스탠리 쿠브릭 감독(1928~1999)으로 변신해서 더 이상 인터뷰도 하지 않고, 영화 홍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익살을 부렸다.

‘킹콩’은 피터 잭슨 평생의 숙원 프로젝트로도 이름 났다. 9세 때 고향 뉴질랜드의 해변 마을에서 TV로 ‘킹콩’을 본 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소년.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1933년판 ‘킹콩’의 스톱모션(인형 등으로 찍는 기법) 애니메이션에 매혹당했고, 그때부터 주말마다 아버지 친구가 사 주신 8㎜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다”고 털어놨다.
사실 미지의 해골섬에서 붙잡혀 와 뉴욕 한복판에서 소동을 벌이는 ‘킹콩’의 줄거리는 너무나 친숙하다. 부분적으로 킹콩이 등장하는 작품까지 세자면 양손가락이 모자라는 이 유명한 영화에서 그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 피터 잭슨은 “나는 관객을 울게 만들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앤(나오미 왓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낯선 도시에서 죽음을 맞는 킹콩의 심리를 120%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 1933년 오리지널에서는 기술력의 한계로 불가능했던 부분이다. ‘반지의 제왕’ 때 여러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던 ‘골룸’처럼, ‘디지털 킹콩’은 앤디 서키스(‘골룸’)의 모션캡처(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한 뒤 나중에 컴퓨터로 합성)를 통한 연기에 힘입어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표정을 성취해냈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욕심을 그때 그때 모두 채우다 보니 상영시간과 제작비가 급증해 버린 점이다. 지난달 26일 미국 ‘버라이어티’지가 보도한 ‘킹콩’의 제작비는 2억700만 달러, 그리고 상영시간은 3시간. 원래 제작사 유니버설과 피터 잭슨 감독이 계약한 조건은 1억7500만 달러에 2시간 30분짜리였다. 피터 잭슨은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와 킹콩의 대결 장면도 원작보다 두 배는 늘어났으니 액션 관객들도 기대하시라”고 우스개를 던졌다.
그의 마지막 인사는 이렇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9세 소년들이 내 ‘킹콩’을 보고 장차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