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舞飛 딴 생각] 영화 속 작업男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03)의 조원(배용준)이 ‘품격 있는 작업남’의 표준을 제시하며 “통하였느냐…” 은은히 읊조린 후, 이젠 ‘작업의 정석’(12월 개봉 예정)이라는 진솔한 제목의 영화가 나올 만큼 ‘작업’에 대한 한국영화의 관심도 높아졌다. 굳이 타고난 바람둥이나 화려한 지골로가 아니어도 좋다. 어느덧 작업의 스타일은 세분화의 과정을 겪었고, 올 한 해 한국영화는 다양한 작업방식을 선보이며 여인네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너는 내 운명’-지극정성 순애보형
농촌총각 석중(황정민)에게 다방레지 은하(전도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매일 아침 갓 짠 우유를 배달하고, 그녀의 다방 간판도 청소해주고, 티켓을 끊어서 쉬게 해준다. 작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공법인 석중의 방식은, 어쩌면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성공률 높은 노하우 아닐까? 여자는 남자의 진심을 느낄 때 감동한다는 것. 숱한 우여곡절을 겪지만 그들이 ‘해피 투게더’ 할 수 있는 건 그런 순수함 때문이다.

‘B형 남자친구’-이벤트 융단폭격형
폼생폼사의 전형인 B형 남자 영빈(이동건)이 그녀를 사로잡는 방법은 수많은 이벤트. 자동차 트렁크에서 풍선 날리는 유치한 수준이라면 하미(한지혜)가, 아무리 A형 여자라도 그렇게 쉽게 빠져들 리 없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허들 넘기를 하고, 엘리베이터 타면 슈퍼맨 놀이를 하고 그녀의 창가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영빈에 작업 철학이 있다면 간단하다. 돈보다는 아이디어. 그리고 순간이나마 그녀에게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라. 새겨들을 만하다.
‘연애의 목적’-변태적 스토커형
유림(박해일)의 레이더에 걸려든 이상, 안 그래도 심난한 그녀 홍(강혜정)의 생활은 한층 더 퍽퍽해진다. 유림은 섹스를 한 후에 사랑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일단 선금부터 땡겨 쓰자는 스타일. “5초만 넣고 있겠다”는 제안을 하고, 이후 술 취해 여관에서 일을 저지르고, 결국 스토커 기질을 발휘해 그녀의 집에 떡하니 입성한다. 하지만 오히려 여자에게 뒤통수 맞은 유림. 작업남의 말로는 가끔씩은 이렇게 고통스럽기도 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황혼기의 관조형
이 영화에 여러 커플 등장하지만, 오여사(오미희)에 대한 곽사장(주현)의 구애만큼 멋들어진 로맨스는 없다. 잭 니컬슨 같은 주현 선생의 귀엽기 그지없는 멜로 연기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 흐뭇하게 심금을 울린다. 긴 세월 동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아, 오직 그녀만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황혼기의 한 남자. ‘내 생애 마지막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는 그 정성에 감동받지 못하는 여자라면….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할 것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유아기적 돌진형
쑥맥인 형 광식이(김주혁)와는 딴판인 동생 광태(봉태규)는, 일단 맘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가리지 않고 달라붙고, 잠자리를 가진 후에 적당한 때 떼어 버린다. 광태가 섹스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쓰는 방법은 칭얼거리는 것. 이후 어떻게 해서 한두 번 만나게 되면 자동차극장 같은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데이트를 하며 기회를 엿본다. 여기저기 들이대며 빈도수를 높이다 보면 걸려드는 건수가 있다는 게 광태의 철학. 성공률은 높지 않다. (월간 ‘스크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