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협영화 '무영검' “발해 마지막 왕자를 구출하라”

‘무영검’(18일 개봉)에서 한국 무협영화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면, 당신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장르 고유의 쾌락과 더불어 100분짜리 상업영화를 소비하고 싶다면, ‘무영검’은 그 기대를 크게 배반하지 않는다. 5년 전 같은 장르의 데뷔작 ‘비천무’에서 드라마적 요소가 불안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김영준 감독은, 이번에는 그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서기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붕괴된 발해. 사멸한 나라의 마지막 왕족 대정현(이서진)은 장물아비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변방의 뒷골목에서 구차한 삶을 연명한다. 발해 재건을 꿈꾸는 세력들은 최고의 여자 무사 연소하(윤소이)에게 정현 왕자를 모셔오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거란 편에 붙은 척살단주 군화평(신현준)과 그의 심복 매영옥(이기용)은 왕자의 목숨을 노리고 뒤를 쫓는다.
홍콩 무협 영화의 대표적 무술감독인 정소동의 조감독으로 시작해 화려한 경력을 쌓은 마옥성이 담당한 ‘무영검’의 액션은 기본적으로 뉴튼의 운동법칙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100ｍ 전력질주하듯 허공과 강물 위를 뛰어다니고, 새처럼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와이어 액션은 우리가 중국 무협에서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상투적 장면들. 하지만 매끄럽게 연결된 와이어 액션은 우리가 이 장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즐기는 쾌락이기도 하다.

‘무영검’은 이서진과 신현준의 결투 보다는 윤소이와 이기용의 대결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우아한 여성 액션에 보다 의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또 검을 교환한 뒤 발끝의 자세 등 멈춰서 있는 순간의 클로즈업으로 꽤 절도있는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장이모의 ‘연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두 개의 검이 세 사람의 몸을 엇갈리게 관통하는 마지막 대결과 스크린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자줏빛 천을 이용해 펼쳐지는 화려한 검술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무영검’은 아쉽게도 배우 캐릭터의 입체화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 등 비장미로 일관하는 신현준과 ‘호위’라는 목적 이외에는 인간적인 감정을 송두리째 거세 당한 듯한 윤소이는 그저 ‘악’과 ‘선’만을 평면적으로 반복하고, TV CF에서 ‘빨간모자 아가씨’란 별명으로 유명해진 이기용 역시 여성적 신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집중한다. 눈치빠른 장물아비에서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영웅으로 변신하는 이서진에게 유일하게 입체적 설정이 주어졌지만, 그 임무를 100% 소화했느냐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