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 할리우드·충무로 러브콜 "분신술 써야 할 지경"

김윤진이 ‘귀환’했다. 신은경, 에릭(문정혁)과 호흡을 맞춘 ‘6월의 일기’(12월 1일 개봉)에서, ‘왕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엄마 서윤희 역이다. 충무로 시계로는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밀애’(2002)로부터 정확히 3년 만의 복귀작이다. 자신을 할리우드 스타로 만든 미국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Lost)의 하와이 촬영현장에서 10시간15분의 비행을 마치고 막 날아온 그녀를 만났다.
“지난 9월 ‘로스트’가 LA에서 에미상을 받을 때, 주연 배우 13명 중에서 저 혼자 시상식 참석을 못했거든요. ‘로스트’ 제작진이 그 때 제게 무척 미안해했죠. 하필 제 촬영 부분만 그 때 잡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시사회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결국 시즌2 촬영 장면 하나를 뒤로 미뤄 주시더라구요.”
사실 요즘의 그녀는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써야 할 지경이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한 ‘로스트’ 는 지금 시즌2 방송 이후 매주 수요일 밤마다 2000만명의 미국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여기서 김윤진은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비밀을 가진 여성, ‘선’(Sun). 미국인들은 이국적인 이 여성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로스트’의 시즌2 촬영은 내년 5월까지 1년치 촬영이 예정되어 있고, 시즌3을 찍게 되면 추가로 한 해를 더 하와이에서 보내야 한다. 몇 달 전에는 그래서 아예 현지에 집을 한 채 구입했다. “하와이에 별장을?”이라며 질투 반 부러움 반의 표정을 짓자, “휴가로 올 때하고, 아예 눌러 사는 것 하고 같은 줄 아느냐”며 손사래다. 촬영이 있는 날은 새벽 4시 40분 집합. 할리우드 인기 배우인 빌리 밥 손튼과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영화 ‘조지아 히트’(Georgia Heat)도, 결국 시즌2와 시즌3의 빈틈을 노려 내년 여름 크랭크인으로 미뤘다.
‘쉬리’의 출연장면부터 CNN 인터뷰 장면까지 직접 편집한 7분짜리 데모 테이프로 오디션을 쫓아다니던 ‘할리우드 신인’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국에서 ‘쉬리’로 인기를 막 얻기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옆자리에 있던 매니저 박정혁 실장은 “매주 특급우편으로 150통 정도의 팬레터가 전 세계에서 날아온다”면서 “영어권 국가들은 물론이지만, 페루 등에서도 삐뚤삐뚤 영어로 써온 편지를 보고 있으면 나도 괜히 뿌듯하다”고 했다.
‘6월의 일기’는 ‘로스트’ 시즌1과 시즌2 사이의 휴지기였던 지난 5월과 6월에 두 달 동안 찍었던 작품.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 인지도 모르고 구박하다가, 실제로 아들이 죽은 뒤에야 그 사실을 알고 무너져내리는 캐릭터를 그녀는 대단한 집중력으로 표현해냈다. 특히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학대당하는 아들의 동영상을 보며 절규하는 ‘엄마’ 김윤진의 연기는, 할리우드와 충무로가 왜 이 여배우에게 함께 프러포즈를 보내고 있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30대 여배우는 설 자리가 없었다”면서 “10년 뒤 마흔을 훌쩍 넘더라도 다양한 표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여배우로 인정받는 게 제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이 그리 거창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