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을 가다] '음란서생'

'형사'의 장터 세트에 총 3억원을 들여 제작한 2000여평의 시전거리 오픈세트는 경기도 남양주 서울 종합촬영소에서도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산으로부터 불어닥치는 칼바람으로 인해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한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 영하의 날씨에도 얇은 한복 차림을 한 배우들은 감독의 '컷' 소리가 나기 무섭게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언 손을 녹이기에 바빴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한 편. 비 오는 날 장면에서는 엑스트라들과 일부 스태프들이 세번이나 물벼락을 뒤집어 써야만 했다. 이처럼 힘든 촬영의 연속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작의(作意) 대로 사극 '첫 경험'을 하는 이범수와 한석규 등 배우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여기에 이범수, 오달수 등 연기자들과 김대우 감독의 입심도 현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했다. 이들이 가끔씩 툭툭 내던지는 말 한마디에 현장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의금부 도사이자 음란소설 삽화가인 광헌 역을 맡은 이범수는 "뜨거운 물을 엎질렀을 때 뜨거운 고통을 느끼는 건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어차피 '본능'에 관한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한다"며 "'음란서생'은 확실히 격이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우리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금방 개봉한다는 것이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식사하고 오면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개성파 연기자 오달수도 '보신탕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을 공개해 웃음 릴레이에 동참했다. 오달수는 "보신탕을 무척 좋아하는데 몇 년 전에 연극 공연 전날 보신탕을 먹고 나서 사악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며 "며칠 전에는 스태프들과 보신탕을 먹으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꾹 참았다. 그만큼 내가 맡은 '황가'의 캐릭터는 순진함 그 자체"라고 말했다. 아역배우 시절 이후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하는 김민정은 "사극이라서 특별히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한복을 입으면서 스스로 '참해지는' 느낌이 좋다. 특히 출연배우 중 유일한 여자라서 참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사', '스캔들' 등 다수의 화제작을 썼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김대우 감독의 '참회'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이 감독 데뷔작인 김 감독은 "그동안 '괴롭혔던' 감독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운을 뗀 뒤 "감독이 이토록 어려운 역할인 줄 미처 몰랐다. 혼자서 글만 쓰다가 많은 배우, 스태프들을 이끌고 촬영을 하려니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시내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점잖은 양반들의 유쾌한 음란 센세이션'을 표방하는 '음란서생'은 현재 70%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로, 내년 1월 개봉될 예정이다. (스포츠조선 양수리=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