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舞飛 딴 생각] 영화속 또 다른 영화를 만났을 때

영화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버그’를 일으키는 순간이 있다. 나는 A라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는데, 원치 않았던 B라는 영화가 툭 튀어 나와 버리다니!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났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최근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사례별 점검한다. ◆ 온고지신
‘소년, 천국에 가다’엔 세 편의 한국영화가 등장한다. 첫 영화는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 80년대 리얼리즘 영화의 문을 연 걸작이며 산업화가 한창인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희망과 좌절을 그렸다. 두 번째는 김기영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영화 속엔 ‘뻥튀기가 튀겨지는 가운데의 정사 신’이 인용되는데, 한국영화사상 가장 그로테스크한 섹스신이 아닐 수 없다. 김기영 감독의 마성적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저 하늘에도 슬픔이’. 한국 최루영화의 걸작이다. 영화 보면서 한국영화사 공부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다.
◆ 심사숙고
왜 ‘너는 내 운명’의 석중(황정민)과 은하(전도연)는 많고 많은 영화 중에 ‘봄날은 간다’를 함께 볼까? 그리고 왜 박진표 감독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울적한 대사의 그 장면을 인용했을까? ‘봄날은 간다’는 변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너는 내 운명’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강조였을까? 영화 속 영화가 전체적인 극적 맥락과 탄탄히 결합된 케이스.
◆ 박장대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위 사진 왼쪽>에서 두철(황정민)과 유정(엄정화)이 함께 보는 영화는, 황정민이 비열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달콤한 인생’. “인생은 고통이야”라며 허우적거리며 걷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황정민이 다시 본다는 설정인데…. 일종의 영화적 조크이기도 하지만, ‘내 생애…’의 원래 제목이 ‘달콤한 인생’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우연만은 아니다. ‘진짜 조크’는 ‘바람난 가족’에서 봉태규가 ‘눈물’을 보는 장면. 자기가 나오는 장면에서 탄성까지 지른다.
◆ 오리무중
12월 개봉예정작인 ‘애인’에서 여자(성현아)와 남자(조동혁)가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보는 영화는 한국 공포영화의 대표작 ‘월하의 공동묘지’. 그들이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되는 데이트 코스였다. 그런데 왜 이 영화였을까? 알 수 없다.
◆ 수미상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태(봉태규)가 경재(김아중)와 함께 보는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앤서니 퀸이 절규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경재도 함께 눈물 흘리지만 온통 스킨십에만 관심 있는 광태는 경재가 왜 우는지 전혀 이해 못한다. 이별 후에 혼자서 비디오로 ‘길’을 보는 광태. 이번엔 자신이 운다.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낸 앤서니 퀸의 심정에 100% 공감한 것일까?
◆ 주객전도
‘사랑해, 말순씨’에서 중학생 녀석들이 숨어들어간 영화관. 당대의 성인영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위 사진 오른쪽>가 상영중인데…. 계곡에서 목욕하며 100% 순도의 순수한 즐거움을 드러내는 정윤희의 저 산산히 부서질 듯 터지는 미소여! 정작 보러간 영화보다 잠깐 삽입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더 인상에 남는 건, 인지상정이란 말인가!
◆ 자포자기
‘B형 남자친구’에서 영빈(이동건)과 하미(한지혜)가 함께 보는 영화는 ‘몽정기 2’. 영빈, 예의 그 시니컬한 말투로 내뱉는다. “야, 재미없다.” 영빈아, 네가 그러면 우리 관객들은 어쩌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