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불꽃처럼 살다간 인생도 멋지지 않나요”

알랭 드 보통을 읽고 있는 여배우를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의자 뒤 기둥에 자신의 뒷머리를 두 번이나 부딪힐 만큼 호쾌하게 웃어대는 여배우를 만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인 최초의 여자비행사 박경원(1901~1933)의 불꽃 인생을 담아낸 ‘청연’(靑燕·29일 개봉 예정)으로 스크린 복귀하는 장진영. ‘싱글즈’(2003)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그녀는, 마치 조증(躁症) 상태만을 지속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자주 그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100억 가까운 대작 영화를 여배우 홀로 이끌어가는 두려움, 거기에 자꾸만 미뤄진 개봉 일정에 대한 우려까지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싶다는 듯. 그녀가 언급한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 장진영을 들여다 본다.
★ 알랭 드 보통 혹은 불안
“중국 로케이션 도중 ‘영화 엎어졌다”는 충무로 루머를 들었을 때 정말 불안하고 속상했어요.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랑 ‘으?으?‘ 술먹으면서 위로도 했을 텐데, 기껏 할 수 있었던 건 수제비나 돼지고기 볶음 같은 음식 만들어 드린 게 전부였죠. 하지만 실화로서의 감동을 지닌 우리 영화의 힘을 믿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다른 스태프의 불안을 잠재우고 싶다는 초조감 때문에 불안해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후 영국의 젊은 작가 보통의 팬이 됐다는 장진영은 지금 그의 에세이 ‘불안’을 읽고 있다고 했다.

★ 윤종찬 혹은 연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한 번 더 나를 다그치죠. 다른 감독님들이라면 벌써 오케이 했을 것 같은데. 촬영현장에서는 그날 찍은 필름을 밤새 음악까지 넣어 다음날 아침 보여주셨어요. 사실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있다는 콤플렉스가 제게 있어요.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 길고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청연’은 윤종찬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 첫 만남이었던 ‘소름’(2001)을 통해 장진영은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평가 받았다.
★ 문소리 혹은 30대
“문소리씨가 그렇게 표현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사랑해, 말순씨’에서 왜 중학생 엄마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연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30대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조금 봐주시면 20대 역할도 할 수 있고, 좀 더 넓게 잡으면 40대 연기도 가능하고요. 20대들이 꿈도 못 꾸는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잖아요.”
그는 “끝까지 배우 하는 선배들을 보면 너무 부럽지만, 아예 젊을 때 사라진 스타들이 더 멋있을 때도 있다”면서 “솔직히 내년, 내후년의 내 얼굴이 두렵다”고 했다.

★ 전도연 혹은 영화제
“마침 엊그제 집에서 TV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시상식을 봤어요. 전도연씨가 ‘너는 내 운명’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내가 은아(주연배우 이름)임을 믿게 해 준 감독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기억에 남았어요. 멋진 말이라기보다 그 진심이 느껴져서요.”
장진영은 ‘소름’(2001)과 ‘싱글즈’(2003)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았다. 덕분에 이번에도 초청받았지만, 대상 영화도 없는데 드레스 입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뻘쭘’했다고 한다.
★ 박경원 혹은 희망
“제가 ‘청연’을 찍으면서 욕심 낸 건, 뒷모습에서도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죠. 우리 홍보 문구에 ‘삶이 힘들다는 요즘, 꿈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꿈을 드리고, 사랑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사랑을 드리겠다”는 내용이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저는 정말 박경원이라는 인물에게서 위로를 받았어요. 여러분에게도 이 영화가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