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요란한 스펙터클·사운드 강렬하지만 파괴력은 좀…

14일 개봉하는 ‘태풍’은 일찌감치 올 최고 화제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충무로 사상 최고의 제작비,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을 내세운 화려한 캐스팅, ‘친구’의 곽경택 감독 이름값은 ‘대작 흥행’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가 시사회를 통해 5일 공개됐다.
핵 위성유도장치를 실은 미국 선박이 동남아를 무대로 활동하던 해적 씬(장동건) 일당에게 탈취된다. 대한민국에 귀순하려 했지만 외교적 문제 때문에 거부되어 부모를 잃은 과거를 가진 탈북자 출신 씬이 원한을 품고 테러를 감행하려 하는 것. 재앙을 막기 위해 엘리트 장교 강세종(이정재)이 급파된다.

‘태풍’은 초반부터 러시아의 도시와 태국의 밀림, 부산 거리를 분주히 오가며 보기 드문 규모를 과시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바다를 무대로 한 요란한 총격전이 압도적인 음량으로 펼쳐져 전개에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작품의 외피는 15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의심스럽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크다.
그러나 ‘태풍’의 볼거리는 규모에 비해 액션과 액션이 이어지고 부딪치는 순간의 질감이 약하다. 놀라울 뿐 감탄스럽진 않다. 진진한 디테일 없이 ‘액션의 설정’만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듯한 전개도 종종 발견된다. 이 영화의 스펙터클한 재미를 집대성한 클라이맥스의 해상 대결은 컷 하나하나는 강도 높지만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파괴력이 크지 않다. ‘한국형 블럭버스터’로서 이 영화는 ‘유령’보다는 클라이맥스가 약하고, ‘쉬리’보다는 인물 묘사가 부족하며, ‘태극기 휘날리며’보다는 감정선을 다루는 방식이 서투르다.
배우들은 제 몫을 했다. 극 초반 핏발 선 눈과 미간에 잡힌 주름을 클로즈업으로 내세울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동건은 캐릭터에 대한 감을 확실히 잡고 자신있게 연기한다. 이정재도 강인한 표정과 멋진 스타일로 호연했고, 장동건 누나 역 이미연도 극적인 인물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중심인물임에도 강세종이라는 캐릭터에 동화가 쉽지 않지만 이는 연기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호연에도 불구하고 ‘태풍’의 주요 캐릭터는 복수심(씬) 군인정신(강세종) 희생정신(씬의 누나) 등 하나의 감정만 지닌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만난 남매가 상봉하는 장면은 눈시울이 뜨겁고 탈북자들의 불행한 과거 묘사는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강렬하기만 한 극중 감정들은 산발적 소용돌이를 만들 뿐 격랑을 이뤄 흘러가진 못한다.
‘태풍’은 분명 대중영화로 재미를 갖췄다. 그러나 충무로 대작이 규모를 지향하느라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