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아찔한 100분짜리 탐닉의 기록

1박 2일로 압축한 연애의 역사, 혹은 같은 시간의 탐닉의 기록.
‘애인’(8일 개봉)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를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전자겠지만, 마치 뮤직비디오를 늘여 놓은 것 같은 100분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난 뒤의 느낌은 후자가 지배적이다.
고층 엘리베이터 안에 단 둘이 남은 남자(조동혁)와 여자(성현아)의 눈이 마주친다. 7년 사귄 권태로운 애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는 “지하 3층까지 아무도 타지 않으면 내가 술 한 잔 사겠다”는 사내의 ‘작업’에 잠깐 흔들린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바꿔 이뤄진 두 번 째 우연. 파주 헤이리에서 그날 오후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이제 스스로의 체면을 무장해제하고, 본격적으로 서로의 성(性)을 소비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사내는 “내일이면 아프리카로 떠날 것”이라며, 여자가 혹시 느낄 지 모를 부담감까지 사전에 지워준다. 처음에는 그 날 오후 6시까지로 예정했던 이 커플의 유효기간은 이제 그날 밤 10시, 다음 날 아침으로 조금씩 연장되고,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자와 남자는 1박 2일 동안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치르는 전 과정을 수행한다.
빈도와 강도 양쪽 모두에서 올 한 해 한국영화 최고 수준의 베드신을 보여주는 ‘애인’은 이 영화의 상업적 지향이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코요태 김민종 등의 뮤직비디오를 주로 찍은 김태은 감독이 만들어낸 세련된 이미지와 조동혁·성현아의 아름다운 육체는 잘 어울리지만,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드라마의 설득력까지 갖추기에 1박 2일은 너무 짧았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