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파헤쳐진 낭만, 그 싸늘한 밑바닥

‘연애’(9일 개봉)를 보는 것은 고통스런 경험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아기 엄마가 매매춘 여성으로 굴러 떨어지는 과정을 차갑게 보여주는 ‘주부 전락사’(主婦 轉落史)이면서, 가해자로서의 남성과 사회제도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고발하는 영상 다큐이기도 하다.
30분에 3000원 받는 전화방 도우미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정주부 어진(전미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감정의 열병에 빠져 결혼에 이를 때만해도, 이렇게 살게 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었다. 결혼 11년이 지나 서른 넘은 아줌마가 된 어진에게 남아있는 건 술주정뱅이 남편과 두 아들. 결국 그녀의 두 번째 선택은 노래방 도우미다. 룸살롱에 갈 능력은 없는 남자들이 모이는 이 곳에서, 그녀(들)은 최소한의 품위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차피 ‘쭉쭉 빵빵한 영계’와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아줌마’들이라는 것을,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낭만적인 제목과 달리, ‘연애’는 서로 간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싸늘하게 보여준다. 매매춘 현장에서 만난 민수(장현성)는 더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 친구하자”고 제안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세속적 욕심을 위해 어진을 치명적으로 욕보인다. 그녀가 유일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전화방 애용 남성이라는 사실은, 판타지로서의 연애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같은 노래방 도우미로 나오는 오윤홍, 그리고 그녀들의 큰 언니로 등장하는 김지숙의 연기도 한국 남성관객의 반성을 촉구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