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기자의 시네마레터] 이매진

작년 가을 뉴욕 센트럴 파크를 찾았습니다. 존 레넌의 추모 공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공원 서쪽 대리석 바닥엔 그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상상해보세요(Imagine)’란 말이 새겨 있었습니다. 팬들이 갖다놓은 꽃과 잡지들<사진>도 놓여 있었지요.
사진을 찍고 나서 잡지 속 그의 모습을 훑어보자니 꿈꾸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줬던 노래 ‘이매진’의 나지막한 레넌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죽여야 할 것도 목숨 걸 것도 없다고 생각해봐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꿈꿔봐요.” 해마다 12월8일이 되면 아직도 광팬의 총에 맞아 세상을 뜬 레넌을 잊지 못하는 팬들이 거기 모여 그 노래를 합창한다지요.

존 레넌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목도 ‘이매진’(1988)이었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느 추종자가 별장으로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초라한 히피 차림의 그 청년은 문 열고 나온 레넌에게 그의 노랫말이 얼마나 위대한지 한참 늘어놓지요. 다 듣고 난 레넌은 “난 단지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낙담한 청년에게 레넌이 묻습니다. “점심은 먹었소?” 청년이 가로젓자 안으로 데리고 간 레넌은 함께 묵묵히 식사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스타임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스를 이끌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대중 기대에 맞추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비틀스 해산 후 매카트니가 달콤한 연가와 흥겨운 록큰롤로 인기를 이어간 반면, 레넌의 활동은 이전 음악을 부정하는 양상을 띠었지요. 해산 후 그의 첫 솔로 앨범 수록곡 ‘갓(God)’에서 “난 예수를 믿지 않아. 난 케네디를 믿지 않아. 난 비틀스를 믿지 않아. 난 단지 나만을 믿어. 난 이제 다시 태어났어”라는 선언까지 했으니까요.
치열한 참여의식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의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할 때가 있었습니다. 가사가 대책없는 이상주의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지요. 게다가 레넌은 실수 없이 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아내 신시아와 이혼할 땐 야박하게 굴었고, 아들 줄리언도 돌보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는 매순간 실존적 고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살았습니다. 인도 철학과 히피즘에 탐닉했고, 아내 오노 요코와 누드로 레코드 사진을 찍었으며, 침대 위에서 평화 시위를 벌였지요. 그의 삼십대는 이십대에 스스로 이루고 누려온 것에 대한 싸움 같은 세월이었다고나 할까요. 그가 음악적으로 타고난 천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레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예술의 원동력이었던 정직한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지요.
노래 ‘이매진’ 후렴구는 이렇습니다.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하겠죠. 하지만 나만 이런 꿈을 꾸는 건 아니랍니다. 언젠가 당신도 함께 하길 바랄게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되겠죠.” 어느덧 레넌이 이 땅 위에 머문 세월과 맞먹는 시간을 흘려보낸 저로선 그 꿈이 결국 현실이 될 순 없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쉽고도 깊은 노래 속에 깃든 소망의 아름다움만큼은 아직 흘려 보낼 수 없습니다. 앞으로 스물다섯번의 12월8일이 더 지나도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