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5.12.14 16:14 | 수정 : 2005.12.14 16:22

이제 2005년도 저물어간다. 올해 극장가를 강타했던 혹은 조용히 스쳐갔던 70여 편의 한국영화들. 연말정산 시즌인 요즘, 이젠 그 영화들에 대해서도 결산을 하며 질문을 던질 때가 된 듯하다. 올해 한국영화에 대해 나름대로 자문자답을 해본다. 그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우연찮은 패턴과 묘한 느낌들에 대해. 1. 아버지는 어디 있는가.
올해 한국영화에서 난 아버지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 부재를 느꼈다는 편이 옳다. ‘사랑해, 말순씨’의 아버지는 중동 노동자다. ‘소년, 천국의 가다’에선 어딘가 수감된 민주투사이며, 아이는 장차 미혼모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다. ‘말아톤’에서 초원(조승우)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미스터 주부퀴즈왕’의 꼬마는 엄마와 아빠의 성역할을 혼동한다. ‘분홍신’의 아버지는 불륜과 함께 사라졌다. ‘파송송 계란탁’의 대규(임창정)에겐 난데없이 어느 꼬마가 아들이라며 찾아온다. 이제 아버지의 자리는 충무로에선 사라진 걸까? 하지만 그 결핍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고, ‘그때 그 사람들’은 남한사회의 영원한 아버지였던 박정희를 처참히 죽여버린다.
2. 순애보의 남자들은 왜 그칠 줄을 모르는가. 이젠 더 이상 마초들이 설 자리는 없다. 대신 그 자리에서 순애보의 남자들이 질주한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 ‘나의 결혼원정기’의 정재영,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주혁, ‘야수와 미녀’의 류승범…. 올해 스크린에서 그들만큼 매력적인 남성은 없었다.
3. 분단 상황은 꼭 스펙터클과 만나야 하는가. ‘간큰 가족’ ‘천군’ ‘웰컴 투 동막골’ 그리고 ‘태풍’. 실향민과 북핵과 한국전쟁과 탈북자를 다룬 이 영화들은 이른바 ‘분단 영화’이면서 동시에 분단을 강렬한 스펙터클로 변화시킨다(‘간큰 가족’은 미디어 조작으로 통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비주얼의 카타르시스로 변한 이념과 역사일까?
4. 여성의 복수극은 반드시 자신에게 칼끝을 향하는가. 복수를 마무리한 금자씨는 흰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죄를 구한다. ‘오로라 공주’와 ‘6월의 일기’의 엄마들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결국은 죽음을 택한다. 왜 여성의 복수는 자책감 위에 있을까? 이렇게 보면 ‘달콤한 인생’에서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라며 피의 향연을 벌이는 남자는 조금은 뻔뻔해 보인다. 예수 가라사대, 음욕을 품는 순간 그대는 이미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 5. 경찰은 죽음의 직업인가. ‘공공의 적 2’ ‘강력3반’의 경찰은 장렬히 죽어간다. ‘잠복근무’에선 칼에 맞는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뺀질이 형사는 죽음을 각오했을 때만 범인을 잡아들인다. 이 영화들이 주는 교훈? 이제 한국의 사회악은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응징할 수 없다.
6. 호러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분홍신’을 필두로 ‘가발’ ‘첼로’ ‘여고괴담 4’ ‘레드아이’ 그리고 ‘목두기 비디오’까지, 올 여름도 어김없이 몇 편의 공포영화가 개봉됐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단발성 쇼크는 있었지만 별로 무섭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한풀이’라는 패턴은 반복된다. 이 영화들이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았던 건, 호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만든 호러여서 아닐까? 진짜 무서운 호러를 위해선, 오로지 관객을 전율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감독의 ‘악취미’가 필요하다.
7. 왜 12월에 이렇게 난리들인가. 1일에 개봉한 ‘6월의 일기’로 시작해 ‘애인’ ‘연애’를 거쳐 ‘태풍’ ‘파랑주의보’ ‘작업의 정석’ ‘청연’ ‘왕의 남자’까지 숨 가쁜 개봉 일정이 이어진다. 외화 ‘킹콩’까지 합치면 정말 난장판이다. 12월이 극장가 대목이라지만, 모두들 영화만 보라는 건가? 정말 답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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