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국 삼촌' 최고 지적인 감독이 만든 ‘뇌의 영화’

알랭 레네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지적인 감독일 것이다. 단편 ‘밤과 안개’(1955년)와 장편 ‘히로시마 내 사랑’(1959년) 때부터 기억과 시간의 테마에 집중해온 프랑스 감독 레네는 영화의 첫 세기가 낳은 탁월한 모더니스트였다.
23일 서울 시네큐브에서 개봉하는 ‘내 미국 삼촌’(1980년)에서 장(로제 피에르)은 연극을 보러 갔다가 여배우 자닌(니콜 가르시아)에게 반해 아내를 버리고 동거를 시작한다. 르네(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성실한 태도로 의류회사 공장장이 되지만 경쟁에서 밀린 끝에, 디자이너가 된 자닌으로부터 레스토랑 매니저로 가라는 굴욕적 제안을 받는다.
간추린 스토리는 충분히 멜로 드라마적이지만, 기억을 핵심 모티브로 삼아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레네가 전통적 화술을 사용할 리는 없다. 세 인물의 파편 같은 과거를 각자의 내레이션에 실어 혼란스럽게 뒤섞는 스타일은 추상적인 모더니즘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난해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화술에 대한 경계를 풀고 집중하면 철학자 질 들뢰즈가 레네의 작품 세계에 대해 명명했던 ‘뇌의 영화’란 호칭이 ‘내 미국인 삼촌’만큼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알랭 로브그리예와 함께 각각 ‘히로시마 내 사랑’과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를 만들었던 레네는 ‘내 미국인 삼촌’에서 생물학자 앙리 라보리를 초대해 밀도 높은 협업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뇌생리학에 기초해 행동 원리를 설명하는 라보리의 말을 사이사이에 깔아놓은 뒤 장과 자닌 그리고 르네의 이야기를 이에 대한 예화(例話)처럼 이어붙였다. “동물은 움직이는 기억의 집합체”라는 라보리의 극중 발언은 ‘인간이란 동물의 기억’을 다뤄온 레네의 영화들을 요약하는 핵심 명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