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옷장 속 신비의 세계…나니아로의 초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거듭된 영국 공습을 피해 페번시가(家) 네 남매는 커크 교수(짐 브로드벤트)가 사는 시골 저택으로 간다. 저택 안의 커다란 옷장을 통해 신비한 나라 나니아로 들어가게 된 네 남매는 그곳이 사악한 마녀 제이디스(틸다 스윈튼)의 주문(呪文) 때문에 영원히 겨울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니아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자(獅子) 아슬란(목소리:리엄 니슨)의 도움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발견한 뒤 마녀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원형적인 모든 이야기는 신화를 꿈꾼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지난 몇년간 SF 장르를 압도해온 판타지 영화들은 선과 악이 투쟁하는 이야기 속에 삶과 세계의 바람직한 작동 원리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29일 개봉하는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J.R.R.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과 함께 20세기 판타지 문학을 대표하는 C.S.루이스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옷장을 통해 연결된 신비한 세계 나니아의 전쟁을 통해 C.S.루이스가 그려내려 한 것은 결국 아이들이 자라기 위해 치러내야 하는 성장의 전투이며, 매일매일 전락의 위험에 맞서야 하는 영혼의 싸움이다. 여기에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아슬란의 운명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슈렉’을 만들었던 앤드류 애덤슨은 처음으로 연출한 실사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별다른 각색 없이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스크린에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을 제외하면 ‘반지의 제왕’보다 ‘해리 포터’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 작품에는 영국 영화 특유의 기품이 있다. 배우들 연기는 과장을 경계하고 시각효과는 요란을 떨지 않는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냈고 대사까지 구사하는 것으로 설정했지만, 아슬란을 비롯한 주요 동물 캐릭터들을 실제 동물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외모에서 표정과 말투까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틸다 스윈튼이 인상적인 ‘나니아 연대기’는 방학용 가족영화로 일정량의 교훈과 재미를 갖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스토리 진행에서 볼거리까지 유장하고 우아하지만 동시에 무딘 느낌도 적지 않다. ‘판타지 대작’에 대한 관객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생각하면 ‘볼거리’도 생각만큼 많지 않다.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의 헬름 협곡 대결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지만, 질과 양 모두에서 보는이를 압도하진 못한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이야기 역시 풍부하고 깊은 상징이나 주제를 품고 있다기보다는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 몇가지를 요약해 제시하는 정도. 다시 돌이켜 보면, ‘반지의 제왕’은 정말 뛰어난 판타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