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을 가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엄정화가 눈 꼬리를 올린 채 매섭게 한 꼬마를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한판 액션신(?)을 벌인다. "너 손으로 (총각김치를) 먹으면 어떡해! 못 살아, 내가!" "(아이가 후다닥 피아노로 달려가 건반을 마구 두들기자) 야~! 너! 김치 먹은 손으로 피아노 치지마~!" 하지만 엄정화는 곧 피아노 앞에서 얼어붙어 버린 채, 멍하니 아이의 연주를 듣게 된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 제작 싸이더스FNH)에서 변두리 학원의 피아노 선생 김지수(엄정화)와 천재 피아니스트 윤경민(신의재)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괜히 학원 주위를 맴돌면서 메트로놈을 훔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던 경민은 딱히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들은 소리를 피아노로 옮길 수 있는 재능과 절대음감을 갖춘 천재 소년. 비록 변두리 학원에서 학부모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지만 음악적 성공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김지수는 경민을 발굴한 스승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나, 종잡을 수 없는 경민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결국 지수는 경민의 불우한 환경들을 접하면서 진심으로 정성을 쏟게 되고, 경민 역시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면서 서로의 가슴 속에 쌓아둔 상처들을 하나씩 치료해 간다. 엄정화는 두 얼굴? 영화 속에선… "김치 그렇게 먹으면 어떡해" 촬영 끝나면… "어쩜 그렇게 김치를 잘먹니"

카메라가 멈추자, 엄정화와 신의재군 사이의 분위기는 180도 돌변한다. 엄정화는 뭐가 그리 예쁜지 "요만한 애들이 김치나 된장 먹는 걸 보면 너무 신기해", "넌 어쩜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니~"라며 신 군의 일거수일투족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고, 모니터링을 할 때도 자신의 무릎 위에 신 군을 앉히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등 곳곳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극중 역할처럼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신 군은 역시 연기보다 연주가 편한 눈치였다. 울음을 터트리거나 화를 내는 등의 감정신은 버거워하면서도 연주를 하는 장면만 나오면 신이 나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댔다. 연기자 지망생이 아니라 그런지, 공동 기자회견에서 다소 돌출적인 행동과 답변으로 취재진과 제작사 관계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현란한 피아노 실력과 실제 천재의 모습을 십분 발휘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고조시키고 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현재 80% 정도 촬영이 진행됐으며, 오는 4월 개봉될 예정이다. (스포츠조선 대전=신남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