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와 ‘동막골’이 뭉쳤다

병술년 새해 벽두 충무로에 새 현판이 내걸렸다. 대한극장 근처 흥국빌딩 4층에 둥지를 튼 영화제작사 ‘K & J’. 강우석(46) 감독과 장진(35) 감독의 영문 이니셜을 더한 이름이다. “이제 서류 결재나 돈 꾸러 다니는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감독 일에만 전념하자”는 데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고, 3일 장진 감독과 그 ‘식구’들이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

영화계에서 붙인 ‘K & J’의 별명은 ‘여차하면 1000만’. 강우석은 ‘실미도’ 한 편으로 1000만 관객을 모은 한국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이고, 장진 역시 2005년에 그러모은 관객 수가 1000만을 훌쩍 넘는다. 8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지난해 최고의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은 원작자 겸 제작자였고, 250만 명을 동원한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는 각본과 연출을 직접 맡았다. 2006년, ‘K & J’에 대한 충무로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진 감독의 휴대폰에 강우석은 ‘오야붕’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충무로에 아직 남아있는 일본식 표현이 조금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를 얼마나 ‘사부’로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진 감독은 “내게 ‘강우석’ 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라면서 “남자니까 직접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사부’나 ‘은인’ 등 같은 종류의 호칭 전체를 포괄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8년 부산영화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진의 연출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에 무릎을 친 강우석 감독이 “한 번 보자”고 제안한 것. 그는 “그때 보니 귀고리를 한 데다 장난기까지 철철 흘렀다”며 “연극적이고 매끄럽지 못한 영화적 표현도 있었지만, 진짜 대단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후배를 추억했다. 이후 강우석 감독이 기획하던 ‘간첩 리철진’은 장진이 연출을 맡게 됐고, 이후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등 장진 감독 대부분의 영화는 강우석 사단에서 투자나 제작을 맡았다.
“그때는 철부지였잖으냐”며 ‘귀고리 감독 시절’을 애교 넘치게 반박하던 장진은 “’간첩 리철진’을 편집할 때 정말 많이 배웠다. 이후 내가 만든 영화는 무조건 감독님께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K & J’의 첫 영화는 ‘형님 먼저’. 안성기 차인표 조재현 주연의 순제작비 100억짜리 대작영화 ‘한반도’가 그 주인공이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위기상황에 빠뜨리는 일본을 막기 위해 100년 넘게 감춰져 있던 비밀을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강 감독은 “CG가 예상대로 나와줄 경우 6월 월드컵 개막식에 맞춰 개봉하겠다”면서 “건방지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국민의 축구사랑과 ‘한반도’의 나라사랑이 일맥상통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생’이 이어받을 바통은 3월 크랭크인 예정인 액션 영화 ‘거룩한 계보’. 감옥에 간 건달이 조직에서 버림받는다는 줄거리다. 장 감독은 “정재영 등 캐스팅이 거의 확정됐다”면서 “조폭 영화도 장진이 만들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했다.
강우석 감독은 “우리가 ‘K & J’를 만든 이유는 ‘시네마서비스’나 ‘필름있수다’ 등 각자의 제작사를 뛰어넘어 감독 일에만 전념할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재능있는 후배 감독들이 돈 걱정 없이 영화를 찍는 ‘감독들의 아지트’로 키워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