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이은주의 죽음과 환생

지난해 2월 22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은주의 대표작. 이은주는 ‘오! 수정’ ‘연애소설’ ‘주홍글씨’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과 가장 깊숙이 연결지어질 만한 영화는 ‘번지점프를 하다’이다.
죽음, 그리고 환생이라는 모티프는 한 여배우를 떠난 아쉬움을 달래는 데 가장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3년 여름. 서인우(이병헌)는 자신의 우산으로 뛰어든 인태희(이은주)를 만난다. 당돌한 그녀는 ‘숟가락은 ㄷ받침인데, 왜 젓가락은 ㅅ받침인가’ 같은 엉뚱한 질문을 잘 하는 여자. 사랑에 빠진 이들이지만, 인우에게 군 입대의 순간이 오고, 태희를 기다리던 인우는 결국 그녀를 다시 못 보고, 제대를 하고 결혼을 한다.
2000년 국어교사가 되어 살고 있는 인우.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한 학생을 만나며 인우는 혼란에 빠진다. 그건 남학생 임현빈(여현수)이었다.
묘한 동성애의 여운마저 느껴지는 영화는 조밀한 이야기 구조와 환생을 믿게끔 만드는 설정으로 여성 관객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병헌과 이은주의 감정적 화학작용이 스크린에 잘 녹아 있어, 새로운 멜로 영화의 한 전형으로 남아있다. 김대승 감독은 이 영화 이후 지난해 ‘혈의 누’를 만들었다. 2001년작. 101분. ★★★★ (5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