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해 첫 세계대회 결승, 한·중 바둑계 기싸움 벌어진다

올해 세계 바둑계의 화두는 역시 ‘중국’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폭발적 경제 성장률만큼이나 중국 바둑의 최근 약진상은 눈부시다. 이 상승세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앞으로 세계 바둑의 중심은 중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높다. 그것은 10년 가까이 ‘신흥 종주국’으로 군림해온 한국 바둑의 2선 후퇴를 뜻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은 창하오(常昊)가 잉씨배를 제패했고 여류 단체전인 정관장배를 품에 안았다. LG배에선 아예 구리(古力)와 천야오예(陳耀燁)가 나란히 결승에 올라 올 봄 한국 땅에서 ‘중국인 잔치’를 예약해놓고 있다. 한국은 같은 기간 동안 춘란배 도요타덴소배 후지쓰배 등의 우승으로 체면을 지켰지만 전체 점유율은 많이 잠식당했다. 한·중 신인왕전, 한·중 천원전 등 ‘각개 전투’에선 이미 잇달아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이창호와 뤄시허(羅洗河)간의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3번기가 펼쳐진다. 올해 첫 세계 기전 결승이란 점, 한·중 양대 세력 간의 정면 격돌이란 점, 신년 커튼을 여는 첫 무대란 점 등에서 특히 주목된다. 10, 12, 13일 삼성화재 본사 건물서 벌어질 이번 대결의 승자는 전리품 2억원과 함께 2006년 첫 세계 챔프란 훈장까지 챙기게 된다.
이창호(31)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총 19회 세계 제패(이벤트기전 포함)에 빛나는 이창호지만 최근 국제 무대서의 활약은 뜸한 편이다. 지난 해 춘란배 우승 이후 나머지 메이저급 대회에선 모두 탈락한 것. 삼성화재배로 범위를 좁혀 봐도 4회 대회까지 초기 3연패(連覇) 이후 7년 간이나 결승 무대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뤄시허(29)는 전형적인 ‘재사 경박(輕薄)형’ 기사. 과거 춘란배 4강 한 차례가 고작이었던 그가 2005년부터 거듭나기 시작했다. LG배서 16강을 밟더니 이번 대회에선 조한승 송태곤 이세돌 최철한 등 한국 신예 간판을 줄줄이 베는 활약 속에 결승까지 줄달음쳐 온 것.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이창호, 갑작스럽게 수직 상승한 뤄시허 등 지난 한 해 양국의 흐름을 상징하는 둘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셈이다.
하지만 뤄시허는 눈부신 속기와 수읽기로 다른 거물들은 곧잘 눕히면서도 이창호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기사. 전형(典型)상 이창호가 천적이란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삼성배의 제한 시간 단축(1인당 2시간)이 뤄시허의 도약 원인이란 분석도 있지만 이창호로선 별로 겁날 게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상대 전적은 이창호의 4전 전승, 그 중 3판이 제한 시간 1시간 이내의 속기 대국이었다.
‘좋은 시작(well begun)만으로도 절반의 성공(half done)’이란 외국 속담이 있다. 이번 회전(會戰)은 이창호 본인으로나 올 시즌 우리 바둑계로 보나 더 없이 중요하다. 중국으로선 10년 간 준우승만 4차례에 그쳤던 최악의 무대. 어느 나라 누가 새해 첫 주역이 될까. 병술년 첫 점괘(占卦)가 곧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