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과도한 밤일로 나이든 남편을…

제목이 관객을 조롱할 때가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경박한 이름표에 혹했다가 진중함에 놀라기도 하고, 중후한 문패가 부박(浮薄)을 포장하기도 한다. 13일 개봉하는 스페인산 영화 ‘죽여주는 여자’(원제 Kill me tender)는 전자에 속한다. B급 코미디 냄새가 짙게 밴 제목 뒤에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쓴 웃음이 웅크리고 있다.

카탈로니아 해변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자 제빵사 네스터는 부인과 사별 후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적적함을 달래라며 딸이 달아준 위성방송에서 밤마다 흘러나오는 에로 영화가 점잖은 노인네를 ‘성욕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급기야 네스터는 늦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딸보다 어린 빵집 점원 마리벨에게 결혼을 ‘구걸’한다. 하지만 흘러간 옛 가수 ‘딘 마틴’팬인 네스터가 섹시 심볼 ‘리키 마틴’과 결혼하는 게 꿈인 마리벨의 눈에 들 리 없다. 네스토를 피해 매춘부 언니를 보러 바르셀로나에 간 마리벨은 마놀로를 만난다. 마놀로는 토끼복장으로 빚쟁이에게 달려가 돈을 받아내고, 팔뚝에 새긴 ‘루저(Loser·실패자)’의 뜻도 모르는 덜 떨어진 남자. 그러나 심심한 건 질색인 마리벨은 마놀로의 ‘욱’하는 성격에 반하고, 네스터와 결혼해 과도한 ‘밤일’로 그를 죽인 뒤 유산으로 마놀로와 살 궁리를 한다.
마놀로의 엉뚱함을 주축으로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하다. 남자를 종착역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쯤으로 여긴 채 충동의 발길질에 육체를 내맡겨버린 마리벨, 죽은 부인의 무덤에 풀이 나기도 전에 욕정의 화신으로 변해버린 네스토…, 등장인물 어느 하나도 유쾌하지 않다. 코믹과 황망함을 널뛰기하며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공식에 다가가지만, 널뛰기의 낙폭이 심해 섬세함이 떨어진다. 그래도 열정이 뒤섞여 소란한 가운데 삶의 공허함을 건드리는 스페인 영화의 장기는 맛볼 수 있다.